열정 강박
바야흐로 열정(熱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부지런한 발과 뜨거운 가슴을 갖지 않고서 살아가기 힘든 승자독식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우리는 강박적으로 열정 갖기를 강요받고 있는 느낌이다. 열정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네이버 사전)으로 사전에 그 뜻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소시민에게 열정이라는 말은 약자의 아우성, 기득권의 착취와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 겨울 추위 속에 416일 동안(이 글을 쓰는 오늘 협상 타결 소식이 보도됨)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인 파인텍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그러하며, 열정페이라는 말로 자신의 소중한 재능을 싸구려 불쏘시개처럼 털린 청년들의 가슴에 맺힌 멍자국이 그러하다.
진정한 열정
나이를 떠나 우리에게 열정은 필요하다. 인류 문명은 많은 대가들의 열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그들의 도전을 통해 우리 삶의 영역은 확장되었다. "네가 좋아하는 걸 해라" "열정을 따라가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진정한 열정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루종일 해도 지겹지 않은 일, 그 일만 하면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몰두하게 되는 일이라면 그건 열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 인해 더 많은 보상이나 안정적 미래를 답보할 수 없다하더라도 말이다.
열정은 만들어가는 것
심리과학적으로 열정은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관심사가 고정되어 있다는 "관심사 고정설"과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를 키울 수 있다는 "관심사 성장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드웩과 그렉 왈튼의 연구에 따르면 고정설과 성장설 가운데 어떤 것을 믿는가에 따라 성과에 차이를 보였다. 이들은 연구를 통해 열정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관심사 고정설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어려움을 만나면 그것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성장설을 믿는 사람들은 아기를 가지게 되면 육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처럼 유연한 적응성을 보였다. 결국 열정은 자신의 태도에 따라 성장으로 연결될 수도 사그러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스펙보다 실력
화려한 스펙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그것은 공허함이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스펙이 포화되다 보니 입사 면접에서도 이젠 스펙을 보기 보다는 '어떻에 어떻게 관심을 쏟아왔으며,무엇을 할 줄 아는가?'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실재로 스펙을 떠나 실력을 갖춘 사람이 업무 성과가 높다는 연구도 보고된 바 있다.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만나는 것이 운명적일 수도 있지만, 열정은 그냥 자라지 않는다. 운은 스스로의 애씀과 도전없이는 만날 수 없다. 너의 열정을 찾으라는 처럼 모호한 말보다 어떻게 적응해갈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말이 더 현실적일 것 같다.
냉정과 열정 사이
최저임금의 문턱을 살짝 넘는 얄궂음을 열정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포장한다. 혹시나 만날 경력의 스펙이나 불이익 때문에 열악한 대우를 열정으로 녹이곤 한다. 이것 또한 사회에 만연한 암묵적 사기와 다르지 않다. 열정이 강박을 벗기 위해서는 냉정과 이성이 필요하다. 머리가 아니고 몸을 움직여 체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아니다 싶으면 노(No)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