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기 위해 자주 가는 카페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반듯하지 않은 땅 모양을 따라 세로로 길쭉하게 골목길에 접해서 지어진 삼층 건물이다. 일층은 카페로 이삼층은 아마도 주인집으로 사용하는 듯하다.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어서 저녁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퇴근 후에 그곳은 전세를 얻은 듯 나 홀로 손님일 때가 많다. 은은한 주광색 조명과 음악은 늘 편안하게 나를 맞아준다. 펍이나 카페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 서로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암묵적인 사회적 에티켓이다. 만약 옆에 앉은 낯선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끼어든다면 얼빠진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시비가 붙을 것이다.
중년의 두 남자가 들어섰다. 테이블 사이 좁은 통로로 대각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시럽을 넣은 카페라테 두 잔을 주문했다. 공간이 아담하고 손님이 없는 탓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사실 그들의 대화 소리에 집중이 조금 흐트러지고 있던 참이었다. 한 남자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합창단의 지휘를 하는 것 같았다. 친구인 다른 남자는 그림에 꿈이 있었던 것 같았다. 소싯적에 H대 미대를 꿈꾸었다는 둥 이야기가 이어졌다.
"요즘 이 동네에서 열리는 음악회가 너무 가볍고 시끄러워졌어. 좀 잔잔하고 품격 있게 기획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많이 안 모일까 봐 그렇겠지"
"음악회 열면 시장이나 의원들이 와서 인사 좀 시켜줬으면 하는데, 내가 지휘할 때는 난 그런 거 절대 안 해줬어. 몇 번 그랬더니 안 오더라고"
"그래도 조금 융통성 있게 하는 게 좋지, 이 친구야"
"나는 그런 걸로 음악회의 본질이 흐려지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시민들이 음악을 향유하는 게 목적 아니야?"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나는 에티켓에 따라 그들의 대화를 못 듣는 척하며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었다. 그가 성가대 지휘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그를 기억해냈다. 십수 년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몇 개월 함께 했던 성가대장이었다. 슈렉 같은 느낌이랄까. 큰 덩치에 상냥한 웃음으로 성가대를 이끌어서 인상적이었다. 그의 부인은 성가대 반주자였다. 당시 목사님이 삼고초려를 해서 어렵게 2년 동안만 맡기로 하였다고 들었다. 내가 성가대에 참여할 무렵 그는 성가대를 떠났다.
그가 나를 알아보았는지 모르겠다. 옛날 기억이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해서 나는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채면서 오래전 성가대 활동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연습실에 모이면 다음 주일에 부를 악보가 배포되었다. 4 성부의 악보는 적지 않은 양이었다. 지휘자는 전체적인 곡의 흐름과 배경, 주의해야 할 곳을 이야기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순으로 몇 번에 걸쳐 파트별로 연습을 시킨다. 처음 쥔 악보여서 음정 이탈이 종종 일어나 연습실은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이렇게 파트 연습이 끝나면 전체 연습을 한다. 몇 번 반복해서 대략적인 완성을 하고 수요일에 다시 모여 연습을 했다. 수요일에 연습을 빠지면 바로 다음 주에 예배 직전 연습이 마지막이 되고 만다.
성가대에는 합창이나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연습량이나 대원들의 기량에 따라 결과물이 고르지 않았다. 대예배 시간에 집단 음정 이탈이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지만 대개 아멘과 박수로 은혜롭게(?) 마무리됐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당과 교회에서 불린 성가를 통해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고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얻었던 즐거운 기억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