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영 중인 병사 외 모든 휴가는 중지하래..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간 다되어서 휴가 하루 전에 이렇게 통보하면.. 조치도 못 하게 하고
아.. 씨.. 이건 말도 안 돼!
흥분한 큰 아들로부터 톡이 들어왔다. 준비했던 가족여행에 부대에 일이 생겨 못 갈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지난가을 가족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 해군은 모르겠으나 아들이 복무중인 공군은 사병도 휴가를 이용해 해외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아들은 두어 달 전부터 절차에 따라 휴가 계획을 보고하고 이미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비상훈련이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상황이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대에 통화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휴가는 예정대로 갈 수 있게 정리되었다. 이번 가족여행은 시작부터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다.
다낭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을 이동해 호이안에 도착했다. 깊은 밤잠에 들어 있는 이 도시는 투본강을 중심으로 약 8만 명이 거주한다. 호이안(會安, Hội An)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1세기경 "바다의 실크로드"라 불릴 정도로 동남아 최대 규모의 국제 무역 항구였다. 서구, 인도, 중국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동서양의 문화가 섞여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이안(會安, Hội An)은 말 그대로 ‘평화로운 회합소’이며 화교를 중심으로 무역이 번성하던 시절에는 베트남어로 하이포(Hai Pho), "바닷가 마을"이라고도 불렀는데, 지금도 영미권이나 유럽에서는 ‘파이포’(Faifo)라고도 부른다.
호이안은 중국의 작은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규모만 작을 뿐 마치 상해의 조계 구역과 비슷한 느낌이다.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가면서 잊혀진 옛 영화의 도시는 20세기 전쟁의 포화에서 비켜갈 수 있었다. 호이안 구시가의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쉴 새 없이 카메라에 손이 간다.
개인적으로 베트남 여행은 두 번째이다. 호찌민의 나라. 미국이 엄청난 자금과 피를 쏟아붓고도 무력으로 정복하지 못한 나라.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나라. 지난봄 처음 호찌민시에 내리면서 생각했던 베트남에 대한 단상이었다.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든 것은 오토바이였다. 퇴근 시간, 뚫려있는 모든 길로 봇물 터지듯 오토바이 행렬이 쏟아져 넘치는 듯했다. 그랩 오토바이 영업이 활발했다. 본의 아니게 오토바이 뒤 자리에 타고 퇴근 물결 속에 20여분을 라이딩하게 되었다.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 아슬아슬한 운전에 나는 잔뜩 긴장하였다. 허리를 꽉 잡은 나는 손에 힘을 좀 빼 달라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가벼운 핀잔을 들었다.
호이안 거리를 걸으면서 뭔가를 태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상점 입구마다 소제단이 마련돼 있었다. 제단이 없으면 작은 소각통이 놓여있었다. 제단에 향을 피웠다. 소각통엔 가짜 돈을 비롯해 종이로 만든 뭔가가 타고 있었다. 심지어 길가에도, 가로수 아래에도 향이 타는 연기를 맡을 수 있다. 처음엔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이러한 향 문화가 발달한 게 아닌가 추측했다. 베트남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다른 세상에서도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돈과 재산을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풍습이 있는데 현대가 되면서 진짜 돈 대신 가짜를 만들어 태우며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뭔가를 태우는 것을 좋아한다. 도자기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소각 전용 기구도 널리 판매되고 있다. 이들에게 분향은 하나의 풍속이자 정신문화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