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넘어 성장하는 지혜
생명현상의 신비 가운데 하나는 외부자극을 느끼고 반응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기본적인 오감을 갖고 있다. 신비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감각의 종류는 더욱 확장되기도 한다.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우리의 뇌에서 하나의 인식된 세계를 형성한다. 같은 환경, 같은 정보라고 해도 각자의 머리 속에 그려지는 세계는 다르다. 감각의 차이, 상이한 개별 경험, 인지적 차이 등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로 표출하는 반응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다른 개성과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홀로 살아가기 보다는 모여사는 게 이득이 크다는 것을 아주 오랜 전에 터득하였다. 공리적 측면에서 시작된 사회화는 계층적으로 분화되면서 계급구조를 만들었다. 백부장, 천부장에게 공동체를 관리할 권한이 부여되었다. 그것은 효율적 관리를 위해 위임된 권한이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이기도 하다. 권력과 권한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리더는 조직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우리의 삶을 시스템화 하기 시작하였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재능과 개성에 따라 잘 하는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분업화, 시스템화가 사회 구성의 기반이 되고 경제활동의 시작이 되었다. 물물교환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사회 시스템은 효용이 극한에 이르도록 치밀하게 발달해왔다. 시스템화 된 삶은 편리하다. 삶의 고민을 많이 덜어주기 때문이다. 심각한 불운을 만나거나 시스템의 규범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면 대개 평균적 평안을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 유지를 위해 자기에게 부여된 과업이 매일 반복된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인지 사회를 위해 사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시스템을 벗어나면 당장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뉴턴은 관성이라는 개념을 갈파했다. 그가 발견한 운동의 제1법칙은 삶에도 적용된다.
시스템 안에서 우리의 삶은 관성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발걸음은 저절로 일터로 향한다. 정해진 일과에 따라 일하고 먹는다. 관성적으로 생각하고, 관성적으로 움직이며, 관성적으로 살다가 관성적으로 떠난다. 이 땅에 등장한 이후 인류는 이러한 삶의 방향성에 동의해왔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어느덧 관성에 순치되었다. 그것은 누적된 경험적 동의이며 유전적 진화를 통해 세대를 흘러가며 전해졌다. 관성적 삶은 편리할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나는 불확실성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많은 고민들을 관성에 맡기고 더 중요한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 관성적 반응의 시그마가 현재의 자신이다. 시스템의 입장에서도 우리는 예측 가능한 구성원으로 정의된다.
리더들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고민한다. 그것은 기술과 시스템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사회적 진화를 꾀한다. 이것은 변화를 요구한다. 때로는 전쟁이나 재난 같은 폭발적 변동의 형태로 발현돼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한다. 혁명,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학교 때로 기억한다. 버스 안은 붐비지 않았다. 나와 너댓 사람이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버스는 한강대교를 지나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나는 버스의 앞쪽에 서있었는데, 갑자기 끼익하는 브레이크 굉음과 함께 앞쪽으로 몸이 쏠렸다. 그 순간, 내 평생 그토록 열정적인 여인을 만난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손잡이를 움켜쥐고 가까스로 버티는 내 가슴 팍으로 한 여학생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안겼다. 얼굴은 빠알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숨소리마저 거친 듯 했다. 그 여학생은 다음 정류장에 내리려고 뒷 자리에서 막 일어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끼어든 앞 차로 인해 버스가 급정거를 하였다. 그 바람에 속절 없이 앞으로 튕기듯 달려나가며 내 품에 던져지고 만 것이다. 위대한 관성의 힘이여~~
낯선 환경에 던져진 관성적인 삶은 이방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문명은 관성과 혁신의 혼돈 속에서 발전해왔다. 혁신은 관성에 대한 창조적 파괴이다. 스트레스와 갈등이 따른다. 그리고 나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 문제는 무감각이다. 중증 당뇨환자의 발가락 처럼 통증도 못느끼고 괴사된다. 감각이 살아나도록 끊임없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려야겠다. 감각없이 관성에 내맡겨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