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익의 논문 요약
Ⅰ. 포스트휴먼의 상상력: 종교 기계
휴머니즘은 인간적 가치를 세계의 중심에 놓고 사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 중심으로만 세상을 투명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을 대신할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같은 존재를 상상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휴머니즘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는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선명하지 않다. 인간 자체가 순정하지 않은 하이브리드이다. 휴머니즘이 상정한 것은 가상의 원형적 인간(original human)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포스트휴머니즘은 새로운 인간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라 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육체가 있고, 인간과 신의 경계에 정신이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이러한 경계선의 붕괴에 놓여있다. 기계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대체하고 있다. 인간은 기계가 되려 하고, 기계는 인간이 되려 한다. 기계는 인간을 신체와 정신, 동물과 신으로 분리시킨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사이버스페이스에 머물 때, 현실에 남아 있는 그의 몸은 고깃덩이가 된다. 정신은 세상 밖의 공간을 자유롭게 여행하지만 동시에 육체는 세상의 공간에 일시 정지해 있다. 기계에 의해 인간은 신이 되면서 동시에 동물이 된다.
Ⅱ. 인공지능과 인간 지우기: 인간 기계
인간이 사라지고 있다. 신체적 기능은 로봇에게 정신적 기능은 인공지능에게 내맡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최종적 휴식, '인간의 중지'이다. 인간의 경험과 노동은 어디까지 대체 가능할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오감과 뇌의 기능은 세밀하게 해부되어 인간 외부의 기계로 인공화 되었다. 한 사람이 살면서 누출하는 모든 정보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클라우드에 남김없이 저장되고, 빅데이터로 분석될 것이며, 인간 삶의 모든 가능성이 인공지능에 의해 분류되고 예측될 것이다. 이 같은 '기계적 묵시록'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영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시리즈를 통해 제기되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 파멸을 초래한다는 '기계적 종말론'의 발상은 인공적인 것이 인간의 본질을 제거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표현한다. 인공은 자연을 대체한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은 비현실적 유토피아를 구축하고 있다. 이젠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조차 어렵다.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인간과 사물의 모든 관계 방식을 데이터로 저장 분석한다. ‘인간–기계=영혼+ α라는 통념도 인공지능의 경우엔 문제가 매우 달라진다. 영혼이 기계화된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낳게 된다. 기계가 인간의 정지, 인간의 휴식을 부르는 일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복제를 넘어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지향한다. 만일 모든 인간과 대화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어쩌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신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모든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방식을 알거나 예측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전지한 능력의 존재가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이 결국 데이터로 저장된다면, 그리고 저장 유무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도 희미해질 것이다. 데이터 저장이 생명이고, 데이터 삭제가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전생을 빠짐없이 기억함으로써 해탈의 길에 들어선 석가모니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기계가 될 때, 세상이 기계가 될 때 구원받는다.
Ⅲ. 인공지능과 신 지우기: 신 기계
한스 모라벡은 《마음의 아이들》에서 사람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로봇 안에 마음을 이식할 수 있다면, 굳이 마음이 특정한 신체 패턴을 고수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 불멸성이자 역설적이게도 기존 인간의 점진적 소멸이다. 마음 이식을 통해 한 영혼이 여러 개의 신체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가정은 환생이나 윤회의 기계적 실현과 연결된다. 종교적 세계의 기계적 실현이며, 종교가 사라진 세계이다. 또한 기계적인 집단 구원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과거 전체의 구원이나 복원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제 새로운 종교는 연구소에서 출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성이 사라진 새로운 테크노 종교(techno-religion)는 알고리즘과 유전자를 통해 구원을 약속할 것이며, 사후가 아니라 현생에서 구원을 약속할 것이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선언하며, 인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우월한 인간 모델인 호모 데우스(homo deus)를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호모 데우스는 본질적인 일부 인간적인 특징은 보존하지만, 육체적, 심적 능력은 업그레이드된 존재이다. 세상은 데이터 종교(data religion), 또는 데이터주의(Dataism)화 된다. 인간은 더 이상 엄청난 데이터 흐름을 감당할 수 없다. "만물의 인터넷(Internet-of-AllThings)과 같은 인공지능 기계가 대신한다. 데이터 종교에서 최고 가치는 ‘정보 흐름’이며, 삶이란 정보의 운동이다. 만물의 인터넷은 신처럼 모든 곳에 있고, 모든 것을 제어할 것이며, 인간도 그 속으로 용해된다. 또한 데이터주의는 “모든 것을 시스템에 연결해야 한다”는 계율을 따른다. 연결을 거부하는 자는 이단자가 된다. 만물의 인터넷에 연결되어 흐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데이터 종교는 “뭔가를 경험했다면 그것을 기록하라. 뭔가를 기록했다면 그것을 업로드하라. 뭔가를 업로드했다면, 그것을 공유하라”를 모토로 삼는다. 사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데이터로 만드느라 분주하다. 데이터가 되지 못한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을 데이터로 만들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가 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는 시대에, 인간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전체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을 예측할 수도 없고, 그 의미를 짐작할 수도 없다. 오로지 만물의 인터넷을 해석하는 인공지능만이 그 해답을 아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Ⅳ. 인간과 기계: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섬
자연은 질서, 조직된 것으로부터 무질서 상태로 붕괴되어가는 경향성이 있다. 이것을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서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음으로써 서로를 제어한다. 효과적으로 산다는 것은 적합한 정보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따라서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내적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에서 질서는 가장 확률이 낮은 것이고 무질서는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전체 우주란 게 있다면, 전체 우주는 정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생명은 파도치는 엔트로피의 바다에 떠 있는 수없이 많은 작은 섬들이다. 그리고 각 생명은 의미, 질서, 정보의 덩어리 같은 것이다
옛날의 기계는 폐쇄적으로 작동하는 태엽 장치에 의존했다. 근대의 자동 기계들은 센서를 통해 외부에서 오는 메시지를 받아 인공지능으로 처리한다. 태엽처럼 닫힌 체계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인간과 외부로부터 음식과 정보를 섭취한다는 점에서 닫힌 체계가 아니다. 생명체는 일정 기간 동안 엔트로피의 증가를 억제한다. 죽음을 늦춘다는 것은 정보와 조직화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체는 엔트로피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미래 세계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메시지의 역할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거대한 바다에서 기계와 인간 모두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섬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과 기계는 모두 “지역적인 반 엔트로피의(anti-entropic) 과정”을 형상화한다.
Ⅴ. 인공지능과 인공 마음: 모든 사물의 마음
버너 빈지는 인간 생명의 발생에 비견할 만한 변화가 이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에 의해 100만 년이 걸릴 발전이 100년 안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의 모든 규칙과 체제의 완전한 폐기를 초래할 것이다. 이 ‘특이점(Singularity)’은 “우리의 모든 모델이 폐기되고 새로운 현실이 지배하는 지점”이다.
인공지능(AI)뿐만 아니라, 컴퓨터 네트워크와 인간과 컴퓨터의 접속이 초래할 “지능확장(IA, Intelligence Amplification)”에 의해서도 특이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자연지능”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AI와 IA의 연계를 통한 발전 즉, 인간이 제작하는 초인간적 기계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낳는 새로운 초인간적 존재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는 존재와 죽음의 의미도 재정의 된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초인간적 존재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현재와는 다른 자아 관념과 자기 인식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이 추구하는 불멸성은 우리의 불멸성과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불멸성 관념은 다른 양태의 종교와 신관념을 생성시킬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저 인간의 대체물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에 마음을 장착하는 과정, 또는 마음이 모든 사물에 스며드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은 ‘인공 마음’이라는 연결 끈을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연결할 것이고, 이러한 과정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존재하는 사물에 남김없이 마음이 스며든다. 그렇다면 마음은 더 이상 인간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닐 것이고, 미래의 마음은 현재의 마음과는 매우 다른 마음일 것이다. 모든 존재에 스며든 마음들의 총합이 낳는 ‘거대한 마음’은 아마 전혀 새로운 신적인 마음일 것이다. 새로운 선악 개념, 새로운 윤리학이 요청될 것이다.
Ⅵ. 종교와 인공지능: 종교의 미래
종교사회학자 윌리엄 심스 베인브릿지는《기계에서 온 신: 종교적 인지의 인공지능 모델》이라는 책에서 규칙 기반 추론(rule-based reasoning)과 신경망(neural networks)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인공지능 형식을 사용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어떻게 종교연구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인지 종교학, 사회학적 연구, 인공지능 연구를 결합하여 ‘인공적인 사회 지능 (ASI, artificial social intelligence)’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는 머지않아 컴퓨터 과학이 기계를 가지고 인지 종교학의 이론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종교적 차별, 신종교 운동, 개종, 종교적 편견, 종교적 협력, 신앙 같은 다양한 종교 현상을 시뮬레이션 실험 중이다.
베인브릿지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종교에 대한 19개의 가설을 제시한다. 마지막 가설은 “종교적 신앙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많은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의 능력은 종교가 초자연적인 것의 실제적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즉 신 존재 증명은 종교의 유지와 별로 상관없으며, 극단적인 초자연적 믿음은 오히려 종교 문화를 분열시키는 경향성을 보인다. 또한 베인브릿지는 “종교의 역설은 매우 많은 서로 다른 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으며, “초자연적인 것 자체에서 유래하는 직접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입력이 없다는 점에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합의는 항상 붕괴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는 초자연적 정보의 전달과 학습과 공유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는 초지능 단계에 이르고 역사 속에서 인간이 획득한 모든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초시간적, 초공간적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우리가 이 기계에게 신이나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은 신과 사후세계의 존재 확률을 계산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수많은 종교적 상상력의 진위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인간에 맞먹는 지능을 가진 기계가, 또는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초지능을 지닌 기계가 신을 믿을 것인지, 즉 종교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의 어느 목사는 “나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인간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창조물, 나아가 인공지능에게도 미치는 구원입니다. 인공지능이 자율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목적에 참여할 것을 권해야 합 니다.”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죄의식을 느낄 것인가, 또는 구원을 필요로 할 것인가? 기계는 어떤 구원을 원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종말론적 인공지능”에 대한 믿음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트랜스휴머니즘을 일종의 종교 운동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종교적인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공상과학을 통해 ‘인공지능의 신화와 종교’라는 주제는 꾸준히 다루어졌다. 그리고 이제 그 과거의 신화가 부분적으로 실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종교’라는 단순한 시각에서 전체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계는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hood)’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인간 세계의 새로운 행위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고, 신은 이제 기계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성스러움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래 문헌을 읽고 주관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이창익, 2016, 〈인간이 된 기계와 기계가 된 신: 종교, 인공지능, 포스트휴머니즘〉, 종교문화비평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