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 박소연 대표의 기사를 보며..
동물권 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열악한 환경과 학대 현장으로부터 개를 구출하는 박대표의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녀의 활동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모금으로 이어졌다. 모금된 돈의 개인적 횡령 여부는 젖혀두더라도 구출된 개들 가운데 상당수가 안락사되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고발된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밝혀진 숫자만도 230여 마리에 이른다.
동물권은 인권 확대 과정에서 도출된 부산물적 개념이다. 인권이 조건 없이 주어진다면 동물권 역시 조건 없이 주어져야 하지 않은가? 동물권은 현대에 들어 이와 같은 법철학적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이 같은 연장선에서 보면 식물권, 곤충권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또한 이 문제는 개의 식용에 대한 논의로 확대할 수 있으나 소모적 논의로 확대하지는 않으려 한다.
예부터 우리는 나름대로 가축을 다루는 방식이 있었다. 가축이라는 말은 '집에서 기르는 짐승'이다. 집에서 길들여 키우기는 하지만 규칙을 두었다. 장소를 한정 지었고 방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핵가족화되면서 반려라는 개념이 생겼다. 동물은 의인화되었고 반려 환경에 적당하도록 개량되었다. 여기에 가장 잘 적응한 것이 개와 고양이다. 장성한 자녀 출가 후에 부부만 덩그러니 남은 가정이 늘고 있다. 반려동물은 적적한 생활에 활력과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최근 내 아내도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싶어 한다.
일부 애호가들의 반려동물 사랑은 유난스럽게 비치기도 한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볼 때, 이런 유난스러움은 어이없는 반전으로 나타날 때가 종종 있다. 박소연 대표의 경우가 그렇다. 그동안 동물권을 대변하는 영웅적 이미지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그녀의 모습은 무책임하고 초라한 모습이다. 가까이 지내는 수의사 친구가 있다. 나는 마당에 중형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어서 이따금 그의 병원을 찾는다. 그 친구에게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주로 '진상 손님'들의 이야기다. 자기들이 키우는 반려동물 사랑에 유난을 떨다가도 막상 치료비 지불 단계에 이르면 태도가 180도로 돌변한다는 게 대부분이다. "아이고 선생님, 얘 꼭 좀 살려주셔야 합니다." 온 가족이 눈물을 짰다가도 우여곡절 끝에 살리고 나면 치료비가 비싸다느니, 내가 언제 그런 치료에 동의했느니 하면서 분쟁이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회생 불가능하여 안락사를 시키는 경우는 더욱 가관이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수면 유도제를 먼저 주사한 후에 독극물을 주사하는데, 돈 몇 푼이 아까워 수면유도제 주사를 제외해달라고 하는 견주도 있다고 한다. 정말 황당할 때는 안락사 처리를 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그냥 안고 나갈 땐, 그 개의 운명에 대해 별 생각이 다 든다고 한다.
서울에 사는 나의 또 다른 친구네는 식구가 점점 늘고 있다. 식구가 느는 건 그의 아내 때문이다. 어느 날 곤란한 형편에 처한 유기견을 한 마리 입양한 것이 몇 달 새 두 마리가 되었다. 그 수는 점점 늘어 몇 해 지나 예닐곱 마리가 되어 함께 살고 있다. 수십 마리의 유기견을 홀로 키우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친구네 집이 그렇게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나는 그녀가 애완동물을 좋아하는지 그렇게 많이 키우고 있는 지도 최근에 알았다. 알리거나 내세울 일이 아닐 테니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다른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 아내의 바람대로 고양이 한 마리를 들일 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입양은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허벌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