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by 타마코치

모처럼 일요일을 가족들과 보냈다. 모처럼 스페인 음식점에서 외식도 했다. 식사 후 뜬금없이 아들이 묻는다.


"아빠 당구 얼마쳐?"


"150!"


"그럼 아버지 한테 오늘 당구 한 수 배워봐야겠다"


아들이 당구 한 수 지도를 청한다. 나는 직장에 들어온 이후 당구는 거의 치지 않았다. 사실 150도 믿을 수 없는 실력이다. 늦은 점심을 마친 후 우리는 당구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휴일 당구장에는 한 패의 중년들이 가벼운 저녁 내기 게임에 열중이었다. 아들은 이전에 이미 친구들과 당구장에 가본 적이 있었다.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외투를 벗어 걸어 놓고, 큐대를 골라 잡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기초적인 사항과 기술들에 대해 시연을 곁들여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전. 호기심 가득한 눈에 익숙치 않은 아들의 손놀림이 오랜 기억 속의 나를 보는 듯 했다. 머리 속에 공이 지나가는 길을 그리고 계산하느라 눈을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생각과 달리 공은 잘 나가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나도 딱 이 녀석 나이일 때 막내 삼촌을 졸라서 당구에 입문했다. 막내 삼촌은 당시에 700정도의 당구실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 당구장에서 게임에 열중인 삼촌의 모습은 내 눈엔 신같은 존재였다. 삼촌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삼촌은 야심한 밤, 내 방 창문을 두드려 내게 대문을 열도록 하곤 했다. 우리집은 구식 한옥이었는데 나는 대문옆에서 가까운 문간방을 썼다. 우리집은 삼촌이 다니던 대학교에서 가까웠다. 그렇게 창문을 두드리는 날은 조용히 다른 식구들 몰래 내 방에 잠입해 내 옆에서 같이 자곤 했다.


삼촌이 방에 들어오면 뭐 하다가 늦었는지 나는 대번에 알아 차렸다. 눈이 따끔거리는 날은 학생데모를 하다가 온 것이다. 격동의 80년대는 서울 중심에 위치한 대학가 인근은 최루가스가 미세먼지처럼 자욱한 날이 많았다. 발꼬랑내가 심하게 나는 날이면 당구를 진창 치다 온 날이다.


"윽~ 삼촌~~~ 발 좀 먼저 씻고와..."


낮부터 시작되어 밤늦게까지 내기 당구를 한 날의 발냄새는 잠시도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당구장에는 슬리퍼를 비치를 비치해두는데, 당시 삼촌이 다녔던 당구장은 슬리퍼가 없었던건지.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당구를 쳤다. 학교 뒷문 부근에 당구장이 몇 군데 있었다. 나와 같은 과 남자 동기들은 주로 '동신 당구장'에 모였다. 푸릇푸릇 앳된 얼굴에 막 배운 담배 물고 카우보이 처럼 심각한 표정을 하곤 했더랬다. 나이가 한 두 살 많은 몇몇 녀석들은 당구를 잘쳤다. 그네들은 재수, 삼수 하면서 벌써 당구에 입문하였던 차였다. 주로 게임비 내기 경기를 했다. 당구실력이 3백, 4백 정도 되는 복학생 형들도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4구 게임을 했지만, 복학생 형들과 고수인 동기들은 3구 게임, 나인볼 같은 경기를 했다. 그건 돈내기 경기여서 나와 같은 피래미들은 끼여들지도 못했다.


요새는 당구장의 풍경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예전의 당구장은 뿌연 담배연기가 제일 먼저 연상된다. '300이하 맛세이 금지'라는 금기사항과 '미성년자 출입금지'는 경고 문구도 변멱에 몇 개 붙어 있었다. 주류회사의 커다란 브로마이드 달력도 기억난다. 그림 속 모델은 아슬아슬한 비키니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육감적인 포즈로 섹시한 자태로 남정네들을 유혹하였다. 우리는 당구를 치면서 흘깃흘깃 보곤했다. 지금은 당구장에 청소년들도 출입할 수 있어서 이런 사진은 보기 어렵다. 전체가 금연구역이어서 공기도 쾌적하다. 포켓볼용 당구대를 비치한 곳을 중심으로 여성들도 제법 출입을 한다. 마치 볼링장처럼 스포츠 경기를 하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당구장 들어가면서 주민등록증 검사도 간혹 받기도 했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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