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열심히 놀아라

잘 노는 게 창의력이다

by 타마코치

"좋은 소식 없어요?"


"올 겨울엔 없을 듯합니다."


작은 애가 이번에 수능을 치렀다. 논술전형도 줄줄이 실패하고 정시모집 전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지인에게 자제의 입시 결과를 묻지 않는 게 에티켓이라고 한다. 대학입시가 낳은 이 시대의 불문율이다. 지인도 궁금하던 차에 에둘러 그렇게 내게 물었던 것이다.


작은 애는 공부를 곧 잘했다. 큰 애와 달리 독립심, 자존심이 강하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성격이다. 작은 애가 마당을 열심히 쓸고 있을 때, "오! 마당을 아주 깨끗하게 잘 쓸고 있구나"라고 칭찬을 한다면, 아마 잡고 있던 빗자루를 홱 던지고 나갈 성격이다. 그만큼 남에게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 학원다니는 걸 싫어해서 학교 수업 들으면서 혼자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 상위 클래스 대부분의 친구들이 "넌 뭘 믿고 과외도 안 받니"라고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과외나 학원을 다니면 혼자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작은 애는 재수한다네요.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고요."


이때 옆에 있던 다른 이가 거든다. 그의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저는 올해 결판 지으려고요. 공부로 밀지, 그냥 놀면서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살도록 할지요. 그런데 지금 봐서는 공부는 접어두고 편하게 놔둘까 싶어요."


대화는 좀 더 이어지다가 다른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교육은 끝장을 보기 어려운 이야깃거리다. 교육 정책과 사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많은 갈등과 담론이 있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다. 달리 보면 어디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도 답답하다는 말이다. 대게는 팔자소관이며, 할 놈은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자식 문제에 흔들리지 않을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소모적 경쟁이 계속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젠 스펙도 소용없다. 그래서 뭘 할 줄 아는 지를 면접 질문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그게 뭐가 됐던 실질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이런 실무적인 능력은 교과서로 배우기 어렵다. 유명한 크리에이터의 강연을 유튜브 강연을 들었다. 내용이 공감이 되어 그의 다른 강연을 연이어 들었다. 어릴 적 그는 공부하기 싫어 대학도 안 갔다. 대신에 영토를 넓히거나 자기와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몇몇과 힘을 합쳐 외세를 물리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는 한동안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 희열을 느꼈다. 그의 작업공간은 PC방이었다. 종일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의 냉대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그는 유튜브 온라인 게임 채널에서 신과 같은 존재이다.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였고, 사회적으로는 루저였던 것이 언제였나 싶다.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의 미래를 내다보는 강연자이기도 하다. 그의 성공요인은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온라인 게임의 그들만의 용어 대신 가급적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초보자들을 위해 쉬운 말로 설명을 한다. 또 자신이 직접 플레이어로 참여하면서 공감을 얻는다. 시청자들은 그가 실전에서 터득한 팁에 귀 기울인다. 그가 시연하는 온라인 게임 중계를 지켜보며 응원하며 같이 열광한다. 그는 게임 유저들의 마음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실전으로 터득해 알았다.


잘 노는 아이가 세상을 건강하게 잘 살아간다고 한다. 그것이 한 가지로 일률적으로 정해질 수 없다. 누군가는 노래를, 누군가는 게임을, 누군가는 학교 공부를 놀이로 여기며 열중한다. 그것이 바로 각자의 재능이다. 그것이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패배자 낙인을 찍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 아이들이 뭔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자. 마당을 쓸 듯 무엇에 열중할 때 방해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된 격려다. 믿음으로 그들의 성장을 다독여보자. 좀 더 잘 놀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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