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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Sep 04. 2023

ENFP의 육아

너 자신을 알라

 MBTI. 한 사람을 몇 가지 안 되는 유형 중의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16비트 기계음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재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사람을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주로 그러한 편이다-라고 이해하고 이러한 약점과 강점을 알고 있다면, 인생의 크고 작은 풍파에 맞서 싸울 때 공격과 방어용 무기를 더 쉽게 고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데 있어서도 나와 다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다름을 통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남편은 나와 첫 글자만 다른 유형이다. 남편의 성격유형 검사를 해보기 전에는 우리 사이의 문제였던 것들이 '남편의 남편다움'으로 여길 수 있게 바뀌었다. 이렇게 관계에 있어서도 성격유형 검사는 쉽게 대답을 내주는 편이다.  

 예전에 ENFP의 육아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강점이며 성격유형을 어떻게 육아에 적용하면 좋은지에 대한 짧은 글이었다. 이번에는 ENFP가 육아를 하면서 바뀐 성향에 대해 쓰려고 한다. 나는 미취학 아동 셋과 함께 사는 워킹맘이다. 남편 외에는 내가 워킹맘인 것을 양가 가족들 모두 은연중에 인정하지 않는데, 이유는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로 시작되는 대화를 할라치면 우리 집의 주요 수입원이 나라고 하던 남편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게다가 나는 2년 전부터 공부도 시작했다. 온 사이버 대학이기 때문에 물론 학교는 온라인으로 다닌다. 출퇴근이 자유롭고 학교를 언제든 오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코로나로 세 아이들이 주로 집에 있기 때문에 화장실을 갈 때조차 달려간다. 나의 출퇴근과 학업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시간 저녁 8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이뤄진다. 게다가 우리 집은 한 끼를 세 번 차린다.  통품이 있는 남편이 식사, 영양가를 따져야 하는 1,2번 아이 둘, 아직 유아식 도입기인 막내(간을 하지 않음). 이것도 요령이 생겨서 기구를 한꺼번에 이용하거나 (둘째 이유식부터 애용해온 인스턴트 팟과 에어프라이어, 그리고 해피콜 압력팬 되겠다) 하루 세끼 두 번의 간식 식단을 미리 짠다.

 길게 말했는데 한마디로 나는 바쁜 ENFP 아줌마란 말이다. 본격적으로 바빠진 것은 셋째가 태어난 이후다. 무계획이 계획인 ENFP인 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국에 오면 미국에서와 다르게 어린이집의 도움으로 육아가 쉬워질 줄 알았지만 그새 아이가 한 명 더 늘었고 다시 시작한 공부는 최선을 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육신을 갉아먹고 있었으며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서 계절이 바뀌는 동안 아이들은 등원하지 못했다. 눈 뜨면 배고파 소리와 놀아줘야 할 것들, 생업과 학업, 집안일은 둘째치고 여러 가지 일들이 한데 엉켜 쌓여갔다. 계획 없인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카오스가 따로 없었다. 내 계획이란 주로 아이들의 양육에 관한 것이다. 꼼꼼한 전자두뇌를 장착한 남편처럼 엑셀을 쓰거나 아이들의 취침시간을 계산해서 적지는 않는다. ENFP는 누가 시켜도 못할 짓이다. 대신 계획을 노트에 휘갈기는 게 전부지만 나름대로 연령대별로 짠 식단, 식구들의 일과표, 아이들 수만큼 연령대별로 발달과정에 따른 나름의 놀이 전략들을 빼곡히 적었다.  해야 할 일을 중요도와 급한 일에 따라 나눠 적는다. 외출할 계획이 있다면 입힐 옷들도 미리 꺼내 놓는다. 양말 짝이 안 맞아서 10분을 허비하기에 나의 작은 전하들은 가만있지 못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날 새롭게 먹은 것 중에 좋아한 것이 있다면 표시하고, 즐겁게 한 활동이 있다면 적었다. 이런 메모는 어린이 집에 등원시킬 때 키즈노트에 사진과 함께 집에서 뭘 하고 보냈는지 간단하게 적어 낼 때도 유용했다. ENFP의 두서없이 보낼 하루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는 계획표를 다시 보면서 얼마나 수행했는지도 확인하고 다음 날 일정을 살피고 준비물을 준비한다.

 영유아기 아이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ENFP의 순발력과 활력은 분명 큰 장점이다. 그렇지만 일관성과 체계성 역시 반드시 필요한 요인이었는데 나는 계획표를 작성하는 방법이 꽤 유용했고 나 자신과 가족들의 일상을 일상답게 이끄는데 도움이 됐다.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성격의 한쪽 면으로먀 치우친 채 어질러진 작업실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저녁 8시에 진하게 내린 커피 한잔과 함께 때아닌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나같은 인간은 평범한 삶을 살래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단 것을 느낀다. 물론 내가 그냥 있어도 나의 나머지 퍼즐조각과도 같은 나와 다른 기질의 남편이 있는 덕분에 일이 풀려가는 것도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다.

 이상 ENFP도 궁지에 몰리면 계획하고 지킬 수 있다. 혹은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엔프피도 균형감있게 살 수 있다. (feat.아이들/내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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