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은 꿈도 많아
일주일에 한번 또는 두번 이상 나는 고급살롱에 간다. 전신마사지와 두피케어, 손톱과 발톱 매니, 패디큐어까지 다 해주고 차와 간식도 내준다.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거나 노래를 요청하면 노래도 불러준다. 예약없이 가도 대기하는 시간도 없이 바로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항상 원장선생님이 직접 해주는데 원장 선생님 이름이 곶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무료다.
짐작했겠지만, 이 멋진 토탈뷰티살롱, 세상 유일무일한 미용실의 원장이자 주인은 바로 여섯살 딸 곶감이다. 가명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살롱을 운영할때는 곶감이가 된다. 여기에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는데 딸이 지어낸 가상의 인물, '곶감이'는 유명한 가수이자 모델인데 잠깐 쉬는 동안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내가 "혹시 곶감씨에요?" 하고 알아봐주면 진짜처엄 "어머, 제 팬이세요? 네, 맞아요."하고 너스레를 떨며 더 친절하게 대해준다. 한번은 곶감이샵에서 원장선생님이 머리카락이 엉킨채로 빗어내려서 머리가 너무 아팠다. 내가 "아이고, 너무 아프네요. 이렇게 아프게 하면 저 여기 다시 못와요. 길 건너에 복숭아샵이 있던데 그리 갈까봐요."라고 했더니 곶감씨는 조금의 당황스러움도 없이 능청스럽게 받아친다.
"아, 길 건너에 분홍색으로 된 복숭아샵이요? 거기도 제가 해요."
할 말을 잃은건 나였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서비스로 손 마사지 해달라고 조르는 연기를 했다. 곶감씨는 장사 수완이 좋아서 그럼요, 하며 손마사지는 물론 등에 올라서서 벽을 집고 왔다갔다 나를 지근지근 밟아가며 전신 마사지도 해주었다. 하중 20킬로의 작은 발이 온몸을 개운하게 풀어줬다. 음악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라고 하질 않나. 네 음악 좋아요 했더니 라이브로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즐겨부르는 국악 동요를 불러준다.
한살 터울의 동생은 홍시라고 부르며 "여기서 일하는 직원인데요, 말을 좀 안들을 때도 있는데 신경쓰지 마세요. 가라고 하면 가거든요." 라며 가끔 우리의 역할극을 훼방놓는 동생을 미리 저지하기도 한다. 곶감이는 그렇게 이 놀이에서 비롯한 예명이며 내가 쓰는 글에서 그녀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곶감이는 미용실 원장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키즈모델이 되고 싶어서 내 휴대폰으로 여러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그 또래의 아이들이 하듯이 손가락 두개로 브이를 올리거나 하는 포즈는 하지 않는다. 새침한 표정으로 카메라가 아닌 저 멀리를 응시하며 나즈막히 말한다. "찍어."
내가 사진 찍기를 피곤해하면서 "곶감아, 이제 많이 찍었으니까 그만하자." 라고 하면 차분하게 나를 달랜다. "많이 찍어봐야지 연습이 되지."
과연 누굴 위한 연습인지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어쨌거나 곶감이는 하는 모든 일에 열심이다.
여섯살이면서 미용실 원장이며 키즈모델인 그녀는 요즘 책을 쓴다.
바로 길복숭아 시리즈인데 원래 이 길복숭아라는 캐릭터는 오빠와 놀이를 하다 생긴 캐릭터다. 길고양이같은 건데 길에서 사는 복숭아라고 곶감이가 지었다. 그녀가 책을 쓰게 된 시작은 이렇다. 내가 작은 종이를 접어 책을 만든다고 하자 자기도 책을 아주 좋아한다고,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이제 막 글씨를 읽기 시작했지만 쓰는 것은 느려서 힘들다면서 나더러 받아적으라고 했다. 길복숭아가 어떤 아줌마에게 잡아먹히려다 탈출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미 캐릭터 자체가 참신해서일까, 그녀가 그린 동그랗고 표정이 살아있는 그림이 사랑스러웠을까 첫 이야기책은 술술 웃음이 나며 읽혔다.
한참 뒤에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께 드린다며 길복숭아 시리즈를 다시 써서 정성스럽게 책을 만들었다. 평소에 곶감이의 그림을 칭찬해주고 예쁘게 여겨주는 그 선생님의 마음을 곶감이도 알았나보다. 곶감이는 하루 반나절이 지나도록 손바닥이 사인펜과 연필로 얼룩덜룩해지며 좋아하는 간식도 찾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작업했다. 아무런 욕심도 없이 즐겁게 작업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되든지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달란트를 세상에 나눠주고 선물하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고 있나 돌아봐지기도...
작가지망생, 다른 직업에는 예비-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신 유독 문화와 관련한 직업군에는 지망생이 붙는다. 의사 지망생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가수 지망생이라고 한다. 그건 다른 직업에 필요한 기술과 배움 대신 예술 문화를 다루는 직업군에는 그 일에 대한 소망이 기술만큼 더 필요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 여섯살 소녀는 이미 지망생을 졸업했다. 그녀의 포부와 노력과 가능성에는 아직 오르지 않은 산임에도 하산해도 좋을 만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키즈모델 지망생이 아니라 이미 키즈모델이고 작가 지망생이 아닌 이미 작가가 된 여섯살 곶감이는 오늘 저녁도 책을 쓰느라 바쁘다.
... 지금 내 휴대폰의 녹음기능을 써서 이야기를 먼저 구술하는 방법으로 창작을 하고 있다.
길복숭아 시리즈 3번째 <길복숭아, 길고구마와 친구가 되다>도 어제 완성됐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잠자리 머리맡에 자기가 쓴 글을 두었다. 직업이 많은 그녀는 온종일 바빴기에 오늘도 단잠을 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