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소녀의 식욕

... 돼지고기 앞다리살 한 근

by 곶감이

-엄마 천국에도 음식을 줄까?

글쎄. 천국에선 뭘 안 먹어도 행복하다던데?

-...배가 고프면?


딸은 스파게티 소스를 입에 가득 묻히고 유아용 젓가락을 스파게티 면에 휘휘 감고 있다. 꼬리 질문이 시작되자 나는 여섯 살의 질문의 진위를 파악하려 집중했다.

-천국에서도 배가 고프면 어떡해?

엄마 생각엔 음식도 있을 것 같아, 곶감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줄 거 같아.

-그렇지? 나도 천국에 음식이 있을 것 같아.


원하던 답이었는지, 베시시 웃고 다시 먹기 시작한다.

딸은 정말 잘 먹고 잘 잔다. 그래서인지 또래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크고 초등학생인 두 살 터울 오빠와 태권도를 가는 길이면 어김없이 쌍둥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딸은 입도 야무진데, 그런 질문에 네, 아니요 대신 "아뇨, 두 살 차이 나요. 저는 여섯 살이에요. 좀 커 보이지만요." 하고 두 번째 질문까지 대답하면서 어른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키는 크지만 머리와 얼굴이 조막만 해서 결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어릴 적에 키가 컸던 나를 닮은 유전적인 탓이 있겠지만 나도 저 무렵에 저 정도로 차이 나게 컸으려나 싶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딸은 삼 남매 중에서 엄마 아빠의 먹성을 닮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첫째는 까다롭고 입이 짧아 초등학생인 아직도 숟가락을 들고 쫓아다니고, 막내도 둘째 못지않게 잘 먹는 편이지만 아직 뱃고래가 작아서인지 양을 따라갈 순 없다.

어제 유치원을 하원하고 태권도에 가는 길, 첫째 둘째에게 물었다. 저녁에 뭐 먹고 싶어?

짜장면. 기다렸다는 듯이 둘째가 대답한다. 이런 류의 질문에 첫째는 항상 못 들은 척 대답이 없다.

내가 짜장면 어언? 하고 말을 늘이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곧장 둘째는 다른 대답 즉 플랜 B를 내뱉는다.

-오리고기!

그래? 고기가 먹고 싶어?

마침 저녁에 고기찬을 생각했던 나는 손뼉 치듯 둘째의 대답을 반겼다.

-응. 고기. 족발도 좋고.

얼마 전에 정육점에서 돼지족발을 사다가 한동안 족발을 원 없이 먹였는데 둘째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첫째는 -응. 그냥 밥.

없다고 하면 내가 서운해할 줄을 알고 건성인 듯 정성인 듯 대답한다. 그것만도 감사하다.


자주 가는 정육점에 아이들과 같이 갔다.

-우와 맛있겠다,

여섯 살 여자애가 진열된 생고기들을 줄 둘러보며 할 소린 아닌 것 같지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탄성에 웃음이 났다.


돼지 앞다리 살을 사다 맛간장과 마늘, 후추와 생강술에 간을 해서 프라이팬에 볶았다. 볶은 고기를 감자전분에 뒤적거려 묻히고 기름을 묻혀 에어프라이에 튀겨냈다. 찬바람이 드는 여섯 시 반 창가에 튀긴 고기를 식히니 노릇노릇한 고기가 바삭해졌다.


-음~ 좋은 냄새. 엄마, 나 맛보기 하나만!


어느새 턱을 쳐들고 장미꽃잎 같은 입술을 벌려 아 하는 모습이 안 먹는 아들도 둔 내 입장에서는 참 기특하다. 한 접시, 두 접시 먹더니 혼자서 거의 한 근에 달하는 돼지고기를 먹었다. 부추무침도 아삭아삭 먹으며 우유 한잔을 달라고 했다.

-조금 매운 것 같아서.. 하고 말끝을 흐린다.

행여 한 그릇 더 안 줄까 봐.


-엄마, 나 배부른 거 어떻게 아는 줄 알아?

밥을 다 먹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와서 물어본다.

어떻게 알아?

-여기 봐, 배꼽이 커져. 배고플 때는 배꼽이 작거든? 근데 지금 많이 먹으니까 배꼽이 커져.


나는 곶감이를 임신했을 때, 또 다른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 만삭이 되어갈수록 커다랗게 넓어져가던 배꼽을 기억했다.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때까지 바닥을 드러내고 나서 아이들이 세상에 나왔다. 특히나 첫째와 성별이 다른 둘째 곶감이의 임신 때에는 기대와 감격 때문이었을까, 배가 부를 대로 불러 있었다. 그때 나의 배꼽과 비교할 수 없이 곶감이의 작은 배꼽은 약간의 변화만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커져 있었다. 작은 배꼽은 윙크하듯 모습을 티셔츠 속으로 금세 감췄다.


곶감아, 바지 한번 입어봐. 이제 작은 옷 골라내자.


바지를 사면 한 계절뿐이 못 입을 만큼 쑥쑥 자라기 때문에 이번에도 둘째 바지만 따로 장만했다. 바지는 찰랑이는 모달이 섞인 소재여서 죽죽 늘어나고 밥을 먹고 앉아도 배가 안불편하게 넓고 신축성 좋은 밴드로 허리가 둘러져있다. 평소에 곶감이는 깔끄러운 소재에 민감하고 배나 무릎이 쪼이는 딱 붙는 옷도 불편해한다.

-와 엄마, 바지라 찰랑찰랑 거려. 꼭 칼국수 같아.


그래 바지를 입어도 먹을 것에 비유하는 그녀의 시선이 참신하다.


한 번은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반바지를 입은 자기 허벅다리를 쓱쓱 문지르면서 그런다.

-엄마, 내 다리는 완전 떡볶이 같아. 쫄깃쫄깃해.


가끔 그녀의 말은 풀기 쉬운 암호와 같다. 책 읽다 말고 일어나서 떡볶이를 해줬다. 우리 곶감이가 나이가 더 먹어도 좋아하는 음식을 따뜻하게 먹일 수 있으면 좋겠다. 밥 해 먹이는 재미와 보람을 알게 해 준 딸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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