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쩔건데>
1. 제주도
7월 10일, 평소에도 제주의 바람은 거세지만
그날 아침은 바람 소리가 본부인이 상간녀 뺨을 때리듯 거칠었다.
아침 해는 두터운 먹구름에 가려져 암막 커튼 뒤로 새나오는 오후 해마냥 힘이 없었다.
오전 7시 40분, 여름용 교복을 입은 중학생 여자아이가 가방 앞주머니를 뒤진다.
찾는 것이 안 나오는지 가방을 뒤집어 털어낸다.
“찾았다!”
가방에서 온갖 쓰레기와 찢어진 종이쪼가리들이 쏟아진다. 작은 플라스틱을 들어 잽싸게 교복 치마에 문질러 닦는다. “아얏.” 손가락에 뭔가 찔린 듯 신음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입에 문다. 그리고 손에 쥔 것을 펴 보인다. 명찰이다. 명찰에 적힌 이름은 ‘온마음’.
거센 바람이 끊임없이 집 지붕과 나무를 흔들어댄다. 우우우웅, 샤샤샤락… 바람이 나무를 훑고 지나는 소리가 점점 세지고, 빗방울이 후두둑 바람에 흩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멀리서 파도가 바위에 철썩이는 소리에 마음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TV를 켠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초조한 듯 시계를 본다. 마음은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엄마! 제주도는 뉴스 몇 번에서 봐?”
“몰라, 이년아, 오늘이 여기서 이틀 째인데, 네가 찾아봐.”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뉴스 화면이 뜬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제주공항 앞에 선 사람들이 쓴 우산이 뒤집어지는 장면이다. 마음은 침을 꼴깍 삼키며 TV 소리를 키운다. “오늘 제주 지역은 초강력 태풍 에위니아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하루 종일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오늘 밤까지 강한 비와 바람이 이어지겠고, 해상에는 물결이 7미터 이상 매우 높게 일겠습니다. 제주 내 모든 학교에서는 임시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도민 여러분께서는 외출을 삼가시고, 항공편과 여객선 운항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싸아아!”
마음은 교복에 달려던 명찰을 바닥에 던지고 그대로 엄마한테 달려간다.
“엄마 오늘 학교 안 가. 휴교령, 휴교령!”
“아이고, 썩을 년이 전학 첫날인데 퍽이나 좋겠네. 잘됐다, 오리 백숙할라고 오리 잡을 거야. 물 끓이니까 얼른 옷 갈아입고 와.”
“웬일이래, 시리얼만 먹이는 계모가. 아빠는 좋겠네.”
“우리 온 형사님, 제주까지 발령 나서 얼마나 기운 빠지겠니, 출근 전에 몸보신 시켜야지.”
마음은 엄마 얼굴을 살피고 불안한 기색으로 말없이 방으로 간다. 옷을 갈아입으며 이삿짐 사이에서 가족사진을 본다. 액자엔 금이 가 있다.
‘아빠 바람났다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마음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엔 아직 어리다. 엄마 잠옷바지 가랑이를 붙들고 무릎 꿇고 빌던 아빠가 흘린 눈물 콧물, 그 비굴한 모습은 마음에게 큰 상처이자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게 불과 두 달 전 일이었다.
마음의 아버지 온영걸은 강력계 형사다. 미제 사건만 맡아 해결하기로 유명한 능력자. 영걸은 전형적인 미남 얼굴은 아니지만 여자들이 혹할 만한 마초적인 느낌이 있었다. 어딘지 쓸쓸한 분위기의 짙은 일자 눈썹은 늘 뭔가를 고민하는 듯 인상을 쓰고 있다. 수염이 빽빽한 턱과 긴 구렛나루는 어딘지 이국적인 느낌도 들었다. 마흔 중반이지만 말투만 늙은이일 뿐 군살 하나 없는 강단진 몸이었다. 온영걸은 시장에 가면 늘 시장 아줌마들에게 덤을 얻어오는 식의 인기를 누렸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영걸은 팬티 한 장 갈아입기 힘든 바쁘고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동료 경찰과 바람이 났다. 상대 경찰은 미혼이었고, 영걸이 어떤 이유인지 그녀와 관계를 정리하길 요구하자 불륜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온영걸을 강제추행으로 경찰서에 밀고해 버렸다. 영걸은 제주도로 유배 오듯 발령이 났다. 영걸의 아내 차복희는 그런 남편을 단번에 포용했다. 주변에서도 그런 복희를 다들 여장부라고 말했다. 잘생기고 능력 있는, 한참 나이 어린 남편 모시고 살려면 그 정도 아량은 있어야 한다는 헛소리도 종종 들려왔다. 물론 그런 조롱 섞인 거짓 위로는 복희의 마음에 더 생채기만 낼 뿐이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시린 마음을 안고 내려온 제주에서의 여름은 태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마음은 부엌 쪽을 바라보며 입을 비죽 내밀고 교복을 벗었다. 교복 치마를 벗어서 그 자리에 두고 블라우스 단추를 풀며 투덜댄다.
“내가 밥 해 달라고 할 땐 한 번도 안 해주더니… 며칠이나 가나 보자.”
속바지와 민소매 차림 그대로 바닥에 던져지듯 내려놓은 교복을 구겨 밟고 서서 벽에 걸린 거울로 옆얼굴을 쓱 훑는다.
“아아. 왕드름이네…”
마음은 양쪽 검지손톱으로 왼쪽 볼에 난 커다란 여드름을 눌러 짜며 고통스러워한다. “아으으으.” 마음이 신음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쥐어짤 때 숱이 많은 긴 단발머리가 찰랑였다. 아빠를 닮은 숱이 많은 일자 눈썹에 속쌍꺼풀이 있는 동그란 눈과 작고 둥근 코, 윗입술이 살짝 들려 특히 옆얼굴이 귀여운 인상이다. 숱 많은 속눈썹이 기다랗게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다갈색의 연한 눈동자는 여름에 특히 더 밝게 빛났다. 살짝 솟은 광대는 아직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지만 직모의 머리카락과 대조되어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얼른 안 오고 뭐하냐, 마음년아!”
“아, 허구한 날 욕이야, 이름에 욕 붙여 쓰는 엄마는 세상에 엄마뿐이야. 마음년… 와, 진짜 친엄마 맞나.”
마음은 여드름을 짜다 말고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 놓았던 반팔·반바지를 집어 들어 갈아입고 나선다. 발로 교복을 쓱쓱 옆으로 걷어치우고 그 위에 양말을 쓱쓱 뒤집어 벗어서 던진다.
복희는 오리 털을 박박 뽑는다. 복희는 쉰중반이지만 타고난 윤기 있고 탄력 있는 피부로 제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민소매에 드러난 팔이 흐린 날씨에도 하얗게 빛날 정도로 피부가 뽀얗다. 하지만 그런 복희도 요 근래는 부쩍 눈가가 꺼지고 피로해 보였다.
“으이 뜨거워라, 야 좀 잡아봐, 뭔 놈의 오리가 이렇게 크냐.”
“제주도엔 도축된 오리를 안 팔아? 왜 사서 고생이야.”
모녀는 오리를 잡고 끙끙 힘을 쓴다. “근데 아빠는?”
“아직 자, 야, 이거 물 마당에 버리고 와.”
“이 무거운 걸 나더러 들라고?”
“야, 내가 널 하드웨어 하나는 장사급으로 낳아 놨지, 무쇠팔·무쇠다리 어디에 쓰실라고? 퍼뜩 다녀와! 이년아.”
“아, 쫌 쫌!”
마음은 엄마 쪽을 보고 투덜대느라 아직 뜨거운 물이 든 솥을 맨발로 걷어차고 말았다.
“아아…!!”
아픈 발을 들고 신음하다 인상을 쓰고 솥을 잡았다. 마음은 여느 여중생과 같은 평균 체형이었지만 무거운 솥을 제법 요령 있게 들 줄 알았다. 복희의 말대로 마음은 힘쓰는 데는 타고나서 집안의 쌀가마며 가구 옮기는 일도 곧잘 해냈다. 마음은 마당으로 이어지는 부엌 뒷문을 손에 든 솥으로 밀었다. 문이 활짝 열리지 않아서 솥으로 문을 밀면서 겨우 통과했다. 문을 다 통과하고 보니 문 뒤에 쌀가마가 있었다. 마당으로 연결된 문지방을 넘어서려는 찰나, 마당의 툇마루에서 낮게 속삭이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문지방에서 뒷걸음치고 몸을 벽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