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쩔건데>
마당으로 연결된 문지방을 넘어서려는 찰나, 마당의 툇마루에서 낮게 속삭이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문지방에서 뒷걸음치고 몸을 벽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비바람 소리에 언뜻언뜻 끊어지며 들리는 영걸의 대화 소리에 마음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비바람 소리가 원망스러운 것도 잠시, 영걸은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감미롭게 누군가를 달래고 있었다.
“오빠가 알아, 안다고, 오죽했음 네가 그랬겠니, 울지 마, 다음 주 월요일에 보러 간다니까? 그래 그래, 프린스에서, 2시 괜찮아? 아니 울지 말고.”
영걸은 한 손으로 수염이 난 까슬한 턱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곤란한 상황에 나오는 습관이다.
그 대화는 아직 중학생인 마음이라도 최근에 가족들이 겪은 일로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솥을 든 마음의 손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크음…”
헛기침을 하며 마음은 솥을 가슴께로 높이 올려 문지방을 넘었다.
“아이쿠야!”
연기 톤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마음은 문지방에서 걸려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가슴까지 들어 올린 솥을 얼굴까지 올렸다. 마음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지만 영걸은 찰나에 보지 못했다. 마음은 그대로 뜨거운 물 한 솥을 아버지 영걸에게 부었다. 오리 털과 기름이 엉긴 더러운 물이 온 마당과 영걸의 반팔, 머리에 쏟아져 비린내가 났다. 더러운 흙탕물이 시내가 되어 흐르는 마당에 엎드린 채로 마음은 흐느껴 울었다. “엄..마.”
콧노래를 부르며 오리를 토막 내고 있던 복희의 귓가에 멀리서 솥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 으어억 하는 영걸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희는 비바람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울며 자신을 부르는 딸의 목소리만 듣지 못했다. 복희는 커다란 식칼을 오리 등에 확 꽂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어머, 여보! 괜찮아?”
“어어.” 영걸은 당황스러워하며 다급하게 휴대폰 버튼을 누른다.
복희는 넘어진 자세 그대로 엎드려진 딸을 넘어서 앞치마를 벗어 남편의 어깨와 머리를 닦았다.
“어, 최 형사, 그래 내가 다시 전화할게.”
영걸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휴대폰 종료 버튼부터 누르고 최 형사를 찾았지만, 바닥에 엎드린 딸내미도, 자신을 위해 아침부터 오리 백숙을 삶은 아내도 그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잘못된 짐작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영걸은 다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통화목록을 지우기만 급급했다. 바지에 쓱쓱 닦아 더러운 오물이 묻은 휴대폰을 닦으며 어색하게 솥을 집어던지며 넘어지던 마음이를 생각했다. 거센 비바람이 열린 부엌문을 통과하며 문이 앞뒤로 힘없이 열렸다 닫혔다. 우연인지 모르게 문 뒤에 놓아둔 쌀부대가 그 문을 받아 주며 문이 덜컹대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 문은 헐거운 경첩을 갈아야 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문이었다.
마치 이 가족의 연대처럼……
쾅쾅쾅쾅!! 그때, 영걸의 집 대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영걸의 두 눈이 커지고 콧잔등에는 식은땀이 났다. 베테랑 형사도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