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수학 시간에 칭찬받았어요.”
“그래? 그게 누구 덕이지?”
“열심히 공부한 저의 성실함 덕분이지요.”
“엄마, 저 오늘 준비물 못 들고 갔잖아요.”
“그래? 그게 누구 책임이지?”
“엄마가 안 챙겨줘서 그런 거지요.”
이렇게 난 억울한 엄마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갈수록 느는 것은 책임감이다.
‘낳았으면 잘 키워야지.’
그 책임감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건 뭐, 사랑으로 전전한 애틋함이기보다는 의무감의 실체에 더 가깝다.
학부모 상담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를 대상으로 이타적인 행동을 보인다.
자녀의 잘한 행동에는,
“저희 아이가 어릴 때부터 글은 참 잘 썼어요.”
“그런 건 제가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잘하더라고요.”
“아이가 예술적 머리가 타고났나 봐요.”
라고 말하며, 아이를 무슨 스스로 잘 크는 초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럴 때 나는 꼭 이렇게 덧붙인다.
“아이가 어찌 스스로 그렇게 잘 크나요? 다 어머님께서 잘 키우신 덕이지요.”
반대로 자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부모 스스로를 얼마나 자책하는지 모른다.
“제가 그때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에게 신경 못 썼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게임을 많이 하게 됐나 봐요.”
“7살 때 아이와 놀아준다고 학습 시기를 놓쳤나 봐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제가 어릴 때 그렇게 소심했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그런가 보네요.”
“저에게 불만이 있어서 아이가 친구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이건 다 부모 탓이라 한다.
그럼,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아뇨. 이게 어떻게 다 부모 탓이겠어요. 아이 성향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다른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죠.”
일어난 사건이나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귀인’이라고 한다.
유독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만 일관적이지 않는 귀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아이 문제를 놓고 ‘잘하면 아이 탓, 못하면 부모 탓’이라는 아이 중심적인 생각만 하는 걸까?
아이가 부모보다 약자라서? 아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을 ‘을’로 본다면, 아이는 절대적으로 ‘갑’이 된다. 그 두 사람 간 애정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이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부모는 이타적 귀인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체면을 지켜주려고, 아이의 자존심을 채워주려고, 아이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그런 것이었다.
‘내 아이는 원래 멋진 아이예요.’
라면서 부모의 노력을 철저히 숨겨 자신의 자식을 더 돋보이게 한다.
‘이 아이는 원래 그렇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만든 거예요.’
라면서 부모는 아이의 가능성을 피력하며 자신을 죄인 만든다.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억울한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어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요즘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참 멋져요.”
“정말? 다 네 덕이야. 네가 알아서 해주니까 엄마가 이렇게 할 수 있어.”
아이가 오늘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 요즘 수학이 이해가 잘 안 가요. 어떡하죠?”
“그래? 다 엄마 탓이야. 엄마가 글 쓰고 그림 그린다고. 미안해.”
역시나, 여전히, 난 억울한 엄마이다.
*귀인 이론 歸因理論
심리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을 찾는 방식에 대한 이론. 어떤 사건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감정, 미래 수행 기대, 동기 따위가 크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