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주변이 보이니?
내 곁의 사람들이 보이고
저기 저 풍경이 좋고
내 마음이,
내 자리가 느껴지고
네가 너무 좋은…….
그렇다면 이제야
당신에게 여유가 생긴 거야.
나 같은 욕심쟁이들은 좀처럼 쉬지를 못한다. 한가지 목표를 정해두고, 그것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일이 끝나게 되었을 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불안함과 자책감이 든다. 잠깐의 여유도 자신에게 용납하지 않는다.
37년만에 처음으로 ‘이제는 좀 천천히 가자.’라는 목표를 세워 보았다. 늘 계획에 따라 생활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이것 또한 목표를 세우고, 세부내용을 적어 보게 된다. ‘내 욕심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기, 방향만 잡아주되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놓아주기. 따뜻한 조력자 되기.’, ‘딱딱하지 않는 따뜻한 선생님 되기’, ‘초심으로 돌아가 신랑 사랑 해주기’ 등 목표에 따른 실천할 일들이 10가지나 되었다.
‘이게 아닌데…….’
또다시 나는 해야 할 일을 찾고 있었다. 스스로를 쫓고 있었다. 천천히 가자고 해놓고선 그러기 위한 해결책들을 찾아야만 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얼른, 지금 당장 실천해야 했다.
과감히 수첩을 덮었다.
‘나 이런 거 안 해.’
누워서 폰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SNS도 들여다 보았고, 다른 선생님들의 유튜브도 보았다. 교육서적만 읽었던 내가 아이들 문학책을 빼어 읽어보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절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었던 일들이다. 이 모두 시간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조금씩 주변이 보인다. 나혼자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을 때는 그 속도에 비해 느리게 오는 이들을 보지 못했었다. 신랑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타박했었고, 아이들은 노력하지 않는다고 꾸중했다. 다른 선생님에게 자기계발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었고, 나를 둘러싼 아름다움과 슬픔에 무관심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랑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나를 얼마나 배려해 주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 관심을 받지 못함에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융통성 없는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꼭 나같이 말이다. 나는 창의적인 생각을 품고 자유롭게 살아나가는 아이가 되길 바라며 그토록 애썼는데 말이다. 이는 모두 자기 속도에 맞추길 바라는 엄마의 영향이었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이또한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는데……. 신규교사 시절, 교장선생님께서 “이선생님은 무얼 잘 하나요?”라고 질문주셨을 때 답변을 하지 못한 나를 늘 탓하며 이렇게 다짐했었다. ‘00한 선생님라는 나의 브랜드를 만들자!’라고. 문제는 나에게는 아직 그런 타이틀이 없다는 것이다.
여유라는거……, 해보니 참 괜찮다.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게 되었다.
서른일곱살, 이제야 난 조금은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아줌마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