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잡으러 올 때
쫓아온다고 그러고,
내가 무언가를 꿈꾸며 달려갈 때 좇아간다고 한다.
그동안 난 늘 뭔가에 쫓기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젠 좇으며 뭘 이루며 살아야지.
30대 중반을 넘었다. 어릴 적, 나에게 ‘30대’란 모든 어른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하물며 대학생일 때조차도 30살 넘어 느지막이 입학한 오빠, 언니들은 모든 답을 가지고 있는 부처님 같은 존재였다.
30살 정도 됐으면 정말 그렇게 다 아는 줄 알았다. 그때의 내 엄마, 아빠처럼 늘 품어줄 수 있는 나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난 왜 이럴까? 이건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30대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게 기대거나, 혹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기게 되면 책임감보다는 부담감이 더 앞섰다. 그 상대가 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난 늘 겁도, 욕심도 많은 아이였다. 늘 모범생이었다. 내가 가야 할 길 밖으로는 절대 내다보지 못하는 융통성 제로인 아이였다. 그렇게 난 학교와 집, 독서실만 다니면서 공부밖에 모르며 살았다.
모의고사에 비해 수능을 심하게 망치고 엄마의 바람대로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교대에 들어가면서 내 꿈은 처음으로 좌절되었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나에게 교육철학, 심리 등의 문과 공부는 재미와 의욕이 없는 대학생활 4년을 안겨줄 뿐이었다.
다행히 교사가 된 후, 재미없던 교대공부와 실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완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르치는 일은 내 적성에 충분히 맞다고 생각되었다. 충분히 보람찬 일이었고, 애를 쓴 만큼, 아니 그 이상의 결과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이제 나의 욕심은 교사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학교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 학생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아이 키우는 일이나 신랑과 지내는 일에도 나는 잘 해내야 했다. 좌절하고 싶지 않았고, 늘 칭찬받고 싶었고, 남들보다 더 나은 선생님, 더 나은 엄마, 더 나은 아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쫓으며 살았다.
앞만 보고 뭔가를 쫓으면서 뛰어가고 있으니 주변은 보이지 않았다. 행복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이제 멀리서 좀 떨어져 나를 바라본다. 힘들게, 혼자서, 아등바등 뛰고 있다. 내가 원하는 꿈은 이게 아니었다. 빨리 앞서가는 선생님이 아닌 좋은 선생님, 잘 가르쳐주는 엄마가 아닌 좋은 엄마, 내조 잘하는 아내가 아닌 그저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정말로, 이젠 정말로 누군가에게 쫓기는 삶이 아닌 진정한 나의 꿈을 좇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좀 천천히 가더라도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