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런다고……
그래서 괜찮다고……
그렇게 해도 되는 거라고……
쉽게, 대충, 말해버리는 사람들이
조금 답답하다.
그렇게 하니까,
우물 안 개구리 소리를 듣지.
학교에서, 사회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 다수결의 원칙을 많이 따른다. 만장일치가 나오지 않는 경우, 더 많은 인원이 선택하는 의견으로 결정하는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선택했다 해도 그 일이 무조건 옳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극도로 비약해서 말하자면, 나쁜놈들만 있는 소굴에서 다수가 정했다 한들, 그 의견이 옳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2020년 예상하지도 못한 요 나쁜 코로나가 세계 전역에 떠돌며 우리를 괴롭혔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비상상황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 터지는 코로나 뉴스에, 교육부, 교육청에서도 갈피를 못잡은 채 정답 없는 공문만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것들을 ‘학교장 재량’, ‘학교 자율’로 정해 책임을 전가하려는 눈치였다.
개학이 연기된 상황에서 학교들마다 답 없는 회의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학교는 소규모의 벽지 학교라서 일찍이 등교개학이 이루어졌고, 전교생 29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다 함께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변의 학교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도 그럴 것이, 인원이 많을수록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론을 냈을 것이고, 그에 의한 소수자들의 반항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회의를 하면 보통 다수결로 의견이 결정되고, 의견을 말하거나 정할 때는 여러 가지 기준을 근거로 내세운다. 그리고 효율성이든, 경제성이든, 수월성이든, 효과성이든지,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한가지 의견을 선택한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적인 상황에서 용이성이나 지나친 형평성을 따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교사들이 교육을 두고서 효율성이나 용이성을 따지면 어떻게 될까? 문제해결의 길이 아마 쉽고 편한 쪽으로, 서로 뭔가를 덜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다. 교육적인 논제에서만이라도 학교는 교육의 목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교육 수요자들의 입장을 바탕으로 옳은 일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어떤 문제를 놓고, 누군가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을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기존의 방법들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전체의 과반수를 넘을 경우에는, 모든게 없었던 일로 되어버린다. 그게 얼마나 목적을 반영하는 것인지, 효과가 좋은지, 내가 조금 힘들지언정 상대에는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등은 전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수의 의견이 묻히게 되었을 때,
“다들 그렇다고 하잖아.”, “우리 학교는 원래 그랬어.”, “시스템이 어쩔 수 없어.” 하며 위로를 해 줄 때도 있지만,
“왜 튀려고 하니?”, “쟤는 뭐가 그리 잘 났다고?” 라며 누군가는 미운소리를 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든, 가르치는 교사로서든, 내가 있는 이 곳이 좁은 우물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많은 부모, 선생님들이 그 속의 개구리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