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냥
여기까지만 오를래.
왜냐고?
꼭대기까지 오를 시간에
주변 풍경도 좀 즐기고,
옆 사람과 기나긴 대화도 나누고,
혼자만의 사색도 좀 즐겨보려고.
그러니까,
정상까지 굳이 올라가지 말자.
나만 조용히 있으면 아무도 모를 거야.
나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칠 때, 하루에 할 양을 아이 본인에게 정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수학문제집을 시작할 경우 하루에 몇 쪽씩 풀지를, 또는 매일 풀지 않는다면 무슨 요일에 풀지를 아이들에게 생각해서 결정해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책임감과 꾸준함을 실천하게 하여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4학년이 된 큰아이와 협의한 결과, 영어단어를 매일매일 외워보기로 했다. 학원에 안 가니 불안하기는 했나 보다.
“엄마, 20개씩 외우면 될까요?”
“20개? 진짜?”
“왜요? 너무 작아요?”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그럼, 15개? 10개?”
“우선, 10개씩 외워볼까? 학습장은 엄마가 만들어 볼게.”
그렇게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열정을 담아, 그날 밤 열심히 학습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본인이 정한 거라 별말은 안 하는데, 좀 힘들어 하는 눈치였다.
“화정아, 그냥 영어단어 5개로 하자.”
“왜요?”
“그 대신 제대로 외우는 거지. 어때? ”
“…….”
“저번에 네가 말한 약속은 잊어버릴게. 아무도 몰라. 암튼 엄마가 5개로 바꾼 거야. 알겠지? 그 대신 엄마가 더 어렵게 학습장 만들 거야. 기대해.”
아이는 스스로 정한 말을 지키지 않는 데에 좀 부끄러운 것 같았다. 본인이 포기한 것도, 안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뭔가를 시작할 때, 최소치와 최대치를 정한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만큼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을 최소치로 잡고, 그것의 두 배 이상을 최대치로 잡는다. 그리고 사실……, 아무도 모르게……, 그 최대치를 내 마음대로 바꾼다.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너무 빡빡해서 포기하지 않으려고, 아주 몰래 목표를 낮추기도 한다.
‘내가 하려고 했던 기준까지는 갔잖아. 그럼 됐지, 뭐.’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상황을 합리화한다.
내가 뭔가를 늘 꾸준히 실천해서 대단하다고?
나만의 노하우, ‘아주 아주 조금을 매일매일 하는 것’, ‘최대치는 숨겨 놓고 내 맘대로 바꾸는 것’……,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