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음 주가 5월이기 때문이다. 뉴스 속 꽉 막힌 고속도로나 사람들로 붐비는 인천공항을 보면 돈은 나만 없는 거구나 싶다. 그래도 집에만 있기에는 긴 연휴다. 돈 안 쓰고도 재미있게 노는 방법.. 같은 것도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1.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다.
2. 스타벅스 무료 쿠폰으로 당보충을 한다.
3. 아파트 사우나에서 목욕을 한다.
4.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본다.
쓰고 보니 은근히 실내외 활동이 골고루 섞인 알찬 코스다. 의기양양 소녀들에게 간다. 시큰둥한 반응에 치트키를 꺼낸다.
"이걸로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까지 퉁치자고 "
곧 소녀들이 개처럼 끌려 나온다. 햇빛을 받으며 바람을 가르는 기분이 상쾌했다. 관절도 회춘한 듯 힘이 넘쳤다. 아이들이 앞서가는 내 뒤를 따라붙으며 같이 가자고 악을 썼다. 속도를 늦추니 웃으며 내 앞을 가로질러 달아난다. 옌장. 속았다.
싸들고 온 음료수 두 개를 셋이서 나눠 마셨다. 잠시 땀을 식히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를 붙잡느라 진땀을 빼는 젊은 엄마 아빠가 보인다. 저맘때 어린이날은 나에게 고난이었다. 갑자기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소녀들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나에겐 저들에게 없는 여유가 있었다.
봄인가 했더니 여름이다. 거리마다 나무들이 푸르고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그 모습이 예뻐 자꾸만 걸음을 멈췄다.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찍고 찍고 또 찍었다.
아아... 중년이었다.
스타벅스에 갔다. 무료쿠폰으로 생색을 내며 커피에 케이크까지 야무지게 시켰다. 내가 카운터와 테이블을 바쁘게 오가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핸드폰만 봤다. 테이블을 똑똑 두드리자 그제서 고개를 든다. 인상을 쓰는 내 앞에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이민다. 먼치킨 두 마리가 냥냥펀치를 날리며 싸우고 있었다. 하하하. 나는 웃으며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좋아요도 누른다. 순식간에 1시간이 삭제 됐다. 급하게 핸드폰을 치우고 근황토크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어떤 주제건 대화의 마지막은 '그러니까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로 끝이 났다. 아이들이 말없이 포크로 남은 케이크를 뭉갰다.
귀찮다는 아이들을 끌고 목욕탕에 갔다. 평소에는 볼일이 없어 몰랐는데 막상 씻는걸 눈앞에서 보니 가관이었다. 샴푸를 제대로 헹궈내지 않거나 귀 뒤나 목 뒤까지 꼼꼼히 씻지 않았다. 다 큰 아이들을 씻기는 것은 힘에 부쳤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엄마가 나를 세신 침대에 눕혀 때를 밀어주던 기억이 났다. 엄마의 터치는 짜증 났지만 목욕 후 부들부들해진 몸을 확인하는 것이 좋았다. 엄마 손이 닿은 날에는 광채가 났다. 역시 엄마 말은 들어서 손해 날 것이 없다는 진리를 우리 아이들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소고기를 잔뜩 넣고 끓인 미역국과 시금치나물, 오징어 젓갈을 곁들여 백반을 차렸다. 나름 찜질방 스타일이었다. 코를 박고 먹는 아이들을 보니 역시 집밥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후식으로 먹을 아이스크림을 꺼내는데 아이들이 케이크와 편지를 내민다. 보름달 빵에 생크림만 바른 야매였다. 편지에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허언으로 가득했지만 고마웠다. 엄마가 된 이후 나의 삶은 가장 힘든 것도 아이들 때문이요, 가장 행복한 순간 또한 아이들로 인한 것이었다.
장안의 화제인 '폭삭 속았수다'를 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였다. 나는 울다가 웃다가 마지막에는 '너네는 커서 꼭 관식이 같은 남자 만나라'며 남편을 흘겨봤다.
9시밖에 안 됐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오늘 재밌었냐 물으니 대답대신 와하하 웃음 이 터진다. 눈을 부릅뜨다 쌍꺼풀이 생긴 모양이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 아니, 솔직히 날로 먹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작은 거라도 하나 사줄걸 후회가 됐다. 도대체 나는 언제쯤이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내년 5월에는 오늘보다 좀 더 풍족하게 보낼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