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은 아파트 관리동 2층에 있었다.
나무목무늬 장판이 깔린 복도 양옆으로 4개의 교실과 원장실이 있었고 주방은 원장실 안에 딸린 작은 방에 있었다. 준공한 지 30년이 넘은 건물은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좁은 일자형 주방 벽에는 꽃무늬 시트지가, 누렇게 색이 바랜 벽걸이 에어컨에서는 눅진한 바람이 나왔다.
"냠냠 선생님~"
나를 부르는, 말랑하고 귀여운 호칭에 웃음이 터졌다. 오늘부터 1일.
나는 냠냠 선생님이 되었다.
출근 일주일 전부터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실전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평생 4인분의 밥만 해온 나에게35인분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양이었고 당연히 알량한 계량도 통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오이시쿠 나레'를 중얼거렸다. 원장이 주문한 '슴슴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음식이란, 예쁜데 공부까지 잘하는 학생처럼 어딘가 불공평한 구석이 있었다.
오전 11시. 점심식사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메인반찬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얼굴로 불고기를 볶으며 무용지물이 된 화구를 노려보았다. 가스레인지는 엄연한 2 구였지만 대용량 웍이 옆 화구까지 침범하는 바람에 실상 2구 동시사용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당백으로 움직여야했다. 재료를 다듬다 웍질을 하고 웍질을 하다 칼질을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틈틈이 설거지까지 하느라 팔이떨어져 나갈 지경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만은 편했다. 온갖 잡념이 사라지면서 온통 '밥'으로만 가득 찬 머릿속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배식은 정확히 11시 30분에 시작됐다. 난리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완성이 되는 게 신기했다. 사실 양이나 간, 시간을 맞추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였다. 진짜 환장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모든 재료를 검지손톱만 하게 다듬는 것, 그게 어린이집 조리의 핵심이었다. 특히 0세 반은 거의 조지는 수준인데, 마지막에는 내가 조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애호박을 7개째 다듬고 나면 세상이 매직아이처럼 보였다. 급식이 조리사의 영혼을 갈아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 배식이 끝나면 그제야 조리사도 식사를 한다. 너무 힘들게 만들어서 이게 맛이 있을까 싶은데 맛있다. 이 와중에 식욕이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할까? 화장실 가는 척 은근히 교실을 둘러본다. 국 속에 파를 열심히 골라내거나, 밥은 안 먹고 교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아이를 보면 옆에 끼고 앉아 먹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맛있었다는 칭찬이 나오는 날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지만 잔반이 많이 나오는 날엔 가슴이 철렁하면서울적해진다. 간편하면서도 빠르고 맛있는 레시피를 찾아내는 것이 나의 지상최대 과제가 되었다.
오랜시간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만 키우며 경력단절이라고 하소연을 했는데 결국 밥 차리고 아이 돌보는 걸로 돈을 벌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인생에 쓸모없는 시간이란 없는가보다. 비록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기는 해도 좀처럼 설렐 일 없는 일상에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요즘이다.
얘들아, 기다려라.
내일도 맛줄 내러 냠냠 선생님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