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胃大)한 유산

잔반처리 인생에 관하여

by 누피


6.25 피난민인 조부모가 내게 물려준 유산은 습관을 넘어 어떤 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생을 전두엽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


" 음식 남기면 죄받는다, 날래 먹으라우!"


어린 내게 지옥에서 남긴 음식을 다 먹게 될 거라는 할아버지의 워딩은 공포 그 자체였다. 동생과 나는 남은 콩나물을 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노란 콩들이 어금니에서 으깨질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올라와 구역질이 났다. 식사는 밥그릇에 숭늉을 부어 들러붙은 밥풀까지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나는 비밀조직의 요원처럼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한 갖가지 전략을 세웠다. 위가 줄지 않도록 수시로 간식을 먹었고 반찬은 국->채소->고기 순으로 섭취해 소화기능을 강화시켰다. 그 결과 나는 고봉밥은 물론이요, 잔반까지 거뜬히 해치우는 '위대(胃大)한' 여자가 되었다. 더 이상 '지옥'과 '음식쓰레기'의 공포에도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에게 남긴 음식이 '죄'라면 할머니에게 남은 음식은 버려지는 '돈'이었다.

할머니는 남들은 버리는 김치꽁다리로 찌개를 만들고 들기름에 볶아 반찬으로 내었다.

육수를 뽑고 남은 멸치 대가리는 튀겨 먹었다.

내생에 튀겨서 맛없는 음식은 그게 처음이었다.

식당에서 할머니가 플라스틱 반찬통을 꺼낼 때마다 식은땀이 났다.


“할머니 그만해,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애미나이, 이게 다 돈이라!"


나는 한숨을 쉬며 재빨리 잔반을 통에 담았다.

어른들과 오래 살다 보면 설득보단 포기가 더 빠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습관이자 정신이며 탐닉에 가까운 식습관은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했다. 나는 누군가가 남긴 밥을 먹는데 스스럼이 없었으며 뷔페에 갈 때마다 뽕을 뽑겠다는 각오로 먹었다. 식당에서 양을 적게 달라고 주문하거나 카페에서 비싼 케이크 시켜 한 두 입만 먹고 버리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모두 나의 식법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이 섭취가 아닌, 향유인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세련된 태도와 여유는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에서는 음식을 남기는 게 예의라고 하던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주인이 충분한 음식을 제공했다는 의미로 해석) 나는 불손한 인간에 가까웠다.


언젠가 불교의 발우공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나무그릇을 사용하여 먹는 사찰의 식사법으로 음식을 남기지 않아 낭비가 없으며 설거지의 번거로움이 없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지옥과 가난의 공포에서 내 몫의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던 나에게는 매우 고차원적인 의식이었다. 문득 윽박을 지르며 남은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한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음식의 소중함이 지옥의 공포로 치환된 점은 애석하지만 그렇다고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과 가난, 생계가 전부인 삶에 대해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배가 터지도록 먹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지 못하고 썩히는 방식으로 재연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낭비하지 않는 삶.

조부모님의 정신은 여전히 나의 삶에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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