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집에서 해 먹으면 더 싸지 않을까?"
꼭 돈을 아끼려던 마음만은 아니었다. 내겐 은근한 요리 부심이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뭐라도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찾아간 문화센터에서 운명처럼 요리교실을 만났다. 선생님은 음식에 대한 철학이 남다른 분이셨다.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했으며 질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세척이 되어있거나 미리 다듬어진 재료는 철저히 배제했다. 모든 재료가 중국산이 아닌 국산 100%라는 점에서도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난 먹는 걸로 장난 안 쳐요 ”
선생님의 자부심은 자주 날 것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흙이 잔뜩 묻은 뿌리채소와 벌레 먹은 유기농 상추를 받은 날에는 요리교실이 아니라 작업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장난은 우리한테 치는 것 같은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었다. 전처리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조리과정은 번갯불에 콩 볶듯 지나갔다. 짜장면 배우러 와서 양파만 죽어라 벗기는 격이었다. 그럼에도 수업 끝에는 늘 엄지를 치켜세웠다. '맛' 때문이었다. 재료가 8할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신선한 제철재료들은 그 자체로 깊은 맛을 냈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슴슴한 뒷맛은 잔잔하게 혀끝을 맴돌았다. 새로운 형태의 중독이었다.
수업이 폐강될 때까지 약 8개월을 수강했으니 그사이 내 요리실력도 사원에서 대리급 정도의 발전이 있었다. 전처리 과정에 스피드가 붙었고 계절에 맞는 재료들을 골라내는 센스도 생겼다. 가끔 사골처럼 오래 끓이는 요리를 할 때는 수련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음식은 꼭 등산 같아서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누군가의 끼니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허무하지만 동시에 의미 있는 일이었다. 요리도 인생도 모두 찰나의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에 스토리를 담으면 그 음식에는 힘이 생겼다.
닭다리살에 전분을 묻혀 기름에 튀겼다. 닭이 폭죽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튀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마스크에 목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뒤 펜싱선수마냥 스텝을 밟았다. 집에서 만들어 먹자고 큰소리치던 어제의 내 입을 찢고 싶다. 기름으로 칠갑이 된 주방바닥을 키친타월로 문질렀다. 이 정도면 사 먹는 게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 인건비도 안 나오는 밑지는 장사였다.
가까스로 완성한 닭을 볼에 담아 양념과 함께 버무렸다. 눅진한 양념 속에 촉촉한 닭기름이 스며들었다. 아아, 이 맛이지. 역시 정성은 배신하지 않았다. 난장판이 된 주방 가운데 퍼질러 앉아 닭강정을 먹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차차, 사진 찍어야지. 기름 묻은 손가락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쓸어내렸다. 가지런히 돌려 담은 닭강정을 앞에 두고 이리저리 각도를 쟀다.
#홈메이드 #닭강정 #엄마집밥
인스타그램 속 한 장의 사진으로 지난한 과정은 미화될 것이다. 서버가 존재하는 한 나의 요리도 사라지지 않겠지. 언제고 과거의 그날로 나를 데려다줄 것이다.
그래도 튀김은 진짜 아니라고, 앞으로 닭강정은 꼭 사 먹자고 굳게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