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키우는 중

중년의 자아찾기

by 누피

월급날만 되면 기억상실증이 도진다.

분명 방금 전까지 일을 그만둬야하나 고민중이었는데

휴대폰에 찍힌 월급을 보고 콧노래가 나오는걸보니

아마도 나는 전생에 노예가 아니었을까.

40대 중반에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까지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히 미끄러졌다.

정규직은 고사하고 일용직 아르바이트조차 연락이 없었다.

종종 보이는 ‘40대 이하’ 라는 문구는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요즘 영포티가 대세라지만 고용 시장에서 마흔이 넘은 나는 한낱 젖은 낙엽일 뿐이었다.

문득 나에게서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자문해본다.

이 나이 되도록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씁쓸하지만

앞으로 남은 삶에 기대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더 슬펐다.

인생은 후불제라더니 생각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내게 앙갚음을 하는 것 같았다.



'나, 이대로 괜찮은가?'

'내가 좋아하는건 뭐지?

‘어떻게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을까?'



이 나이에 사춘기 중학생 딸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꿈이 없다는 딸의 말에 갓잖은 말로 훈계를 두곤했는데

막상 내 일이 되고보니 진로결정이란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고민만 하기에 시간이 아까워 미뤄왔던 자격증 공부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문제집만 펴면 잠이 쏟아지고 난독증마냥 책 한 장 넘기기도 어려웠지만

그것도 하루이틀 시간이 쌓이니 제법 모양새가 났다.

주말이 되면 스타벅스에 가서 글을 썼다.

안 써지더라도 일단 뭐라도 끄적이다보면

아무렇게나 던져진 마음이 정리 됐다.

남편에게서 자립하고 아이들에게서 독립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6개월이 흘렀다.

현재 나는, 낮에는 어린이집 주방장으로, 밤에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 살고 있다.


"너 커서 뭐될래?"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운 인생이지만

가슴 떨리는 인생은 아직 내게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