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줄만 알았다.
마스크에 닿는 촉감과 뜨끈한 입김이 싫어서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나가지 않았다. 한 번 나갈 때 해야 할 일들을 우르르 처리하기 시작했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그러던 중, 오랜만에 밖에 나갔다. 옷가게에 들렀다. 옷을 하나 살까, 하는 마음으로 여름옷을 구경했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었다. 마스크 안으로 뜨끈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와중에도 옷이 눈에 들어 왔다.
옷을 입어 보았다.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옷으로 하나 사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던 중 거울을 다시 봤다. 혹여나 섣부른 판단이 될까봐, 다른 옷도 구경하고 나서 그래도 잊혀지지 않으면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옷을 내려 두고 다른 옷가게들을 둘러 보았다. 이전 가게에서 입어 보았던 그 옷이 잊혀지지 않았다.
다시 그 가게로 갔다. 옷이 없다.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그 옷이 없다. 다른 사이즈만 남아 있었다. 직원 분께 여쭤 보았다.
- 혹시, 여기에 옷 없으면 없는 건가요?
직원님의 답변은 이러했다.
네, 없는 거예요.
옷이 없다. 아까 내가 입어 보았던 그 옷이 마지막으로 남은 사이즈의 옷이었다. 나는 계속 떠올랐다.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그 옷이 없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오랜만에 들렀던 옷가게에서 발견한, 오랜만에 마음에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그 옷이 더이상 없다. 마음은 차근히 가라앉았다.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가야 하게 된 후로부터 자그마한 걸로도 마음이 금세 가라앉았다. 옷 하나가 없었던 것뿐인데, 거대한 생각들이 밀려왔다.
나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영화도 마음대로 못 본다.
나는 방학하면,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가기로 했는데, 그러지도 못한다.
예쁜 여름 옷들을 많이 사 놓았는데, 밖에 잘 나가지 않아서 별로 입지도 못한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한다. 이제는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옷마저 살 수 없다. 한 번 가라앉기 시작한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더 가라앉을 뿐이었다. 점점 깊게 가라앉고 있던 중 엄마가 옆에서 나한테 그랬다.
품번 알아 와 봐. 인터넷에 있는지 찾아보게.
그래, 인터넷. 다행인 건 내 마음에 들었던 옷이 가맹점의 상품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당장 다시 들어가서 품번을 적어왔다.
집에 도착해서 검색을 하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해야 할 걸 그랬나보다. 적어 놓은 메모가 내 실수로 지워진 모양이다. 이건 뭘까. 이 옷을 입지 말라는 그런 메시지인 걸까. 다시 나는 속상했다. 친구에게 나의 속상함을 얘기했다.
친구와 얘기하던 중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 옷의 품번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떠오른다! 떠오른다! 완전히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얼추 비슷하게는 떠올랐다. 그 품번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뭔가 다른 품번이었다. 끝에 숫자가 조금 달랐다. 그래도 눈으로 보기에는 맞는 것 같아서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옵션을 선택하려는 순간, 남은 수량이 '1개'라는 알림을 보았다. 당장 구매했다. 너무나 기뻤다. 나는 생각을 바꿨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었다.
이상하다. 예정 출고일이 지났는데도, 도착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해당 브랜드의 고객센터로 전화했다. 재고가 없다고 하셨다. '1개' 남았다는 알림이 이미 품절되었다는 알림이었나보다. 씁쓸한 마음을 숨기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품번이 다른지 여쭤 보았다. 동일하다고 하셨다. 나는 당장 내가 주문했던, 품번이 애매하게 달랐던 옷을 취소 부탁드렸다. 다시 생각을 바꿨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혹시나 모른다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내가 기억하고 있던 품번을 검색해 보았다. 있다. 그때는 왜 눈에 보이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 겨를도 없이 나는 당장 구매 여부를 확인했다. 재고가 넉넉한 것도 확인했다. 당장 다시 주문했다. 주문한 바로 다음날 상품이 출고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너무 자주 바꾸는 것 같았지만, 다시 생각을 바꿨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있다.
기분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이러한 사태가 된 후로부터 내 기분은 쉽사리 바닷속으로 풍덩 빠졌다. 그럼에도 나는 늘 금세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잠깐 잠을 자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차근차근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마치, 구명 조끼를 입고 산소통을 등에 메고 안전 장비를 한 채 바다에 빠진 것처럼 아무런 탈 없이 바닷속을 누볐다가, 아무 탈없이 다시 땅으로 올라왔다. 이 사태로 인해 많은 어려운 점을 경험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핸드폰이나, TV를 보면 이 사태에 관한 얘기나 부정적인 부분을 더 접하게 된다. '머지않아 지나갈 거야.' 라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내려두고, TV를 껐다. 그리고 하늘을 봤다. 자유로이 하늘을 누비는 새가 보였다. 부정적인 소식에 사로잡혀 있었더라면, 저 새를 만날 수 있었을까. 당장 고개를 들면 볼 수 있는 하늘의 표정이 어떠한 지 알 수 있었을까.
바닷속에 잠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심정인지 섬세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의 자아는 수면 위에 있었고, 나는 육지에 있다. 하늘이든, 땅이든, 바닷속이든, 어떠한 곳으로도 갈 수 있는 나의 자아와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가득했다.
비로소 나를 돌본다는 기분이었다.
부디 말이 씨가 되어 진실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말한다.
머지않아 지나갈 거야.
곧 괜찮아질 거야.
평범한 일상이 돌아올 거야.
모두 안전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