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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ul 24. 2020

오늘은 내 생일이야.

빠밤.

세상에나. 오늘 내 생일이었다. 케이크도 깜박했는데.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생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며칠 전에도, 오늘도, 자고 일어나니 도착해 있는 문자들로 오늘이 나의 생일임을 인지했다. 눈을 비비고 감사한 분들의 연락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답장을 적었다.


하나하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우와, 나 정말 오늘 생일이구나.


스무 살 이후의 생일은 교복을 입었을 때 맞이했던 생일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뭐랄까, 차분해진 기분이었다. 그냥, 잔잔한 기분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십 대 때 맞이했던 7월 24일에는 기대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케이크. 빛나고 맛나는 이 음식을 만나지 않으면 생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십 대가 지났다. 생일 때에는 꼭 케이크를 먹어야만 생일 기분이 났던, 십 대가 끝났다.


왜 그때의 나는, 그토록 케이크를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름 그럴싸한 답을 생각해 냈다.


나는 케이크를 생일의 증거라고 생각했구나.


나는 케이크를 생일을 잘 보냈다는 하나의 증거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어린 마음에 케이크를 먹지 않으면 속상했다. 지금와서 그때를 생각해 보면 괜히 웃기다. 스무 살이 되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일 때 먹었던 둥근 케이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스무 살이 되고, 나 스스로에게 알게 된 점이 의외로 많다. 생일 때마다 케이크 노래를 불렀는데, 사실 나는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보편적인 생일의 모습을 따라하고 싶은 마음에 꾸역꾸역 케이크를 먹은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달다란 디저트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카롱을 좋아하지 않았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 가면서 나의 입맛이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내가 그러했는데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내가 나의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다.



평소와 다름없이 물결처럼 잔잔한 하루. 엄마가 나에게 집안일 중의 몇 가지를 부탁했다. 나는 장난으로, "오늘 나 생일인데-!" 라고 말했다. 엄마가 그런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게, 너 생일인데. 엄마가 할게. 쉬어, 쉬어.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실수했다. 다시 엄마에게 "장난이야, 내가 할게!" 라고 말했다. 내가 엄마였다면, 조금 서운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엄마의 생일 속 엄마처럼.


엄마는 엄마의 생일 때에도 집안일을 멈춘 적이 없다. 아빠는 아빠의 생일 때에도 일을 멈추신 적이 없다. 이제 대학교도 방학을 맞이하고, 하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전부인 내가, 고작 생일이라는 이유로 집안일을 미루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부모님은 자신의 생일이 되어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생일은 평소의 날들과 다를 정도로 더 많이 행복해야 하는 날이 아니었다. 생일이라고 해서 나의 탄생이 갑자기 의미 있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증명해 오고 있었고, 생일이 유일하게 행복해질 정도로 평소의 나날들이 행복하지 않은 적도 없다. 매일이 늘 평범했지만, 행복했다. 행복해서 평범했던 것인지, 평범해서 행복했던 것인지 조차 잘 모를 만큼 매일이 의미 있는 하루들이었다.


부모님은 나보다 어른이어서, 진즉에 아셨기에 자신의 생일에 그렇게 묵묵하셨던 것일까. 아니면, 자식의 생일은 묵묵하게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견뎌 주셨던 것일까. 오늘은 나의 생일인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더 많이 떠오른다. 다행이다. 나의 생일이기에, 이제야 다른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구름 모양이 멀리서 보면 하트 모양이다.


오늘은 내 생일이야.


그래,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 생일이니까, 그래도 나의 날이니까, 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났던 오늘, 이 날의 과거 부산은 정말 너무나 더웠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더위가 심한 날에 태어났다.


장마도 포함하여, 여름이 매우 더운 것만은 아닌 듯이, 나의 성격은 내가 태어난 여름 속 열대야 시기처럼 간혹 성격이 활활 타오를 때가 있었다. 가뜩이나 무더웠던 날에, 엄마는 나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다.


그래, 나의 생일은 엄마와 아빠의 날이다. 무더위에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셨던 엄마와, 나를 낳으실 때 엄마에게 머리카락이 뜯기셨던 아빠. 두 분의 날이다.


할머니는 지금도 이 날이 되면 말씀하신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더위를 환기하시며.


아이고, 무시라. 예정이 니 태어난 이 날이 그때 을마나 을마나 더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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