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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Aug 05. 2020

이렇게나 감동이라니.

이렇게나 자주 감격스럽다니.

밖에 나가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살찐이와 함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덕분에, 매일이 감동스럽고, 감격스럽다.



감동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출처_네이버 국어사전


감격
1. 마음에 깊이 느끼어 크게 감동함. 또는 그 감동.
2. 고마움을 느낌.

▲출처_네이버 국어사전



감동, 감격. 이러한 감정들이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을 살찐이 덕에 배웠다. 감정의 명칭만 보면, 마치 '행복'처럼 몰랐을 때에는 까마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어떠한 기분을 '감동이다.', '감격스럽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지 몰랐기에.


그래, 나는 몰랐다. 무엇이 감격스러운 감정인지, 무엇이 감동스럽다고 할 수 있는지. 과거 나는 무던한 아이였다. 기분이 늘 나쁘지 않았다. 늘 밝았다. 그럴 때 사람들이 물었다.



예정아, 어쩜 그렇게 밝아?



나는 늘 밝은 사람으로 보여졌다. 내가 그렇게 보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를 그렇게 봐 주셨던 분들이 모두 친절한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어른, 좋은 친구들, 좋은 지인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셨기 때문에, 내가 밝은 모습일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에게는 냉정한 모습이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야 그 성격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과 나의 동생은 나와는 다르게 냉정한 모습이 없다. 흔히 말하는 '잔정'이 많다. 슬프게도, 나에게는 없다. 나에게는 그런 잔정이 없다.


이런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똑같은 학원을 다녔다. 많은 해를 그 학원의 선생님들께 배웠다. 나를 가르쳐 주셨던 학원 선생님들이 그대로 계셔 주신 덕분에 나의 부족한 부분을 전부 알고 계셨다. 그렇게 늘 감사함만을 지니고 있었을 때, 고등학생이 되었다. 오랜 인연은 단 몇 번의 말로도 쉽사리 무너진다. 그 몇 해 동안 쌓은 인연이 단단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나의 냉정한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이 우선으로 들었다. 그러기에는 오랫동안 눈치를 보며 참기만 했던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나 자신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늘 학원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지만, 단 몇 번의 말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작별 인사를 드린 후로부터는 모든 연락이 끊겼다.


한 번 시작된 냉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거나, 별로 오래 만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 예전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혹여나 내가 너무 불친절해 보일까봐,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다행히 친구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날이 선 모습으로 살아 오던 중 고등학생 때 살찐이를 만났다. 무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두 번째 날.


거대한 파도는 잔잔한 물결에서부터 자라난다. 늘 혼자 삭히고 삭히다가 발효가 된 것처럼, 무수한 공기 방울들이 터지듯, 똑같은 태도로 대응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쌓이고 쌓인 물결이 만들어낸 물보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파도는 쉽사리 가라앉을 줄 모르고, 늘 그렇게 물보라를 유지한 채 살아왔다. 꽤 오래 철렁이는 마음으로 지냈다.





방파제



그러던 중에 살찐이를 만났다. 나 조차도 버거웠던 파도가 점점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살찐이는 내게 방파제가 되어 주었다. 다시 내가 잔잔해지도록 토닥여 주었고,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나 조차도 버거웠던 파도를 진정시켜 주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파도가 잦아들었다.


냉정함 대신 파도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잔잔했던 감정은 다양한 감정을 수용했고, 굴곡이 커지더라도 이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감정들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보였다.



행복, 감동, 감격, 슬픔, 기쁨, 서글픔, 미안함, 아픔, 쓰라림.
이외에도 여러 감정들.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다니.





살찐이는 종종 식구들 옆으로 와서, 사람에게 몸을 누이고 단잠을 청한다. 늘 그랬듯이 바닥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살찐이가 다가와 옆에서 잠을 자면 너무나 감동스럽고, 감격스럽다. 상을 받던 순간에도, 대학교에 합격하던 순간에도, 이렇게나 감격스러웠던가. 아니다. 살찐이가 전해 준 감정이 훨씬 더 거대하다.


하루는 울컥하기도 했다. 거대한 믿음이 온몸으로 전해진 느낌이었다.





늘 같았던 집의 모습도, 살찐이로 인해 매일이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살찐이가 함께 있으면, 여러 생각을 해 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내가 이렇게나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내가 이렇게나 사소한 것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얼굴에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아도 살찐이를 따라 햇살 아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살찐이를 따라 눈을 마주 보았을 뿐인데, 시선이 주는 중요함을 알게 된 것처럼,




살찐이는 여러모로 나를 다듬어 주었고, 내가 잔잔해 질 수 있도록 보듬어 주었다. 살찐이는 알까, 나의 매일이 살찐이 덕에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스럽고, 감격스러운지.



살찐아, 나는 우리 살찐이 덕분에

매일 행복하고,
매일 감동스럽고,
감격스러워.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같이 살자!



살찐이를 만나고,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은, 잠시 쉬면 된다는 것이다.


나보다 훨씬 자그마한 동물이 주는 감동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나도 살찐이에게 그런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매일매일 바라고 바란다.


살찐아,

그거 알아?

나는 살찐이 덕에

점점 더 나다워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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