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나에게 제목은 존재할까.
하물며, 부제라도 존재할까. 아, 말이 이상하다. 순서가 틀린 것만 같다. 논문을 써야 할 때에도 그러하듯이 커다란 제목이 있어야 소제목을 붙일 수 있지 않았던가. 나는 알면서도 왜 나에게서 소제목을 찾으려 할까. 나는 그저 이 공간에서 부재인 것일까.
나는 또다시 지치고야 말았다. 또다시 지쳐서 과제들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글을 찾는다. 이제 나는 2학년 마저 끝나간다. 끝나가는 만큼 더 잘 마무리하고 싶어서 글이 떠올라도 글을 참았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글이 고팠다.
무엇을 하다가 이렇게 또다시 끝자락에 가까워졌을까. 올해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될 동안 나는 멈추지 않았다. 책도 내고, 대외활동도 하고, 학점도 챙겼다. 적다고 말한다면, 그리 많지 않는 것들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결코 '것'이 아니었다. 멈추지 않고 차근차근 걸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차근차근 걸었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이리도 공허할까. 그냥 내 어릴적 놀던 동네 놀이터에서 아침부터 밤이 될 때까지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나의 전공은 처음부터, 지금도, 앞으로도 나의 자부심이겠지만, 해야할 것들이 점점 쌓일 때마다 숨이 막힌다. 하나를 하고 나면 또 하나가 쌓인다. 과제를 받으면 받는대로 해내는데도 이상하다. 하나를 하면 이제는 하나 이상으로 더 쌓인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느리게 하고 있는 걸까. 이상하다. 빨리한다고 생각했는데, 줄어들지가 않는다.
고작 몇 가지 과제 때문에 이렇게 지친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초,중,고를 겪으며 하루에 6과목, 7과목의 수업을 들으며 집중력과 참을성을 길렀는데, 앞자리가 2로 바뀐 순간 와르르 사라졌다. 나는 이제 모르겠다. 이 정도로 지쳐도 되는 건지, 충분히 지칠 수 있는 건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 지 조차 모르는 이와중에, 곧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다 되어 가는 이와중에, 고작 이런 걸로 지쳐도 되는 걸까. 나는 이 마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주로 그런 고민을 지니고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마저도 나는 놀라웠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었다니.
이상하다. 나는 누가 내게 '충분히 지칠만하다.'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면서, 쉽사리 털어놓지 않는다. 목구멍까지 걸린 말을 털어 놓으려 하면, 이내 다시 삼키어진다.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예정아, 너는 왜 잘 들어 주기만 하고 너 얘기를 안 해 줘?
얘기를 하려고 하면, 이게 그렇게 누구에게 털어 놓을 만큼 거대한 말인가, 하는 생각이 나의 입을 막는다. 나의 입을 막은 벽은 점차 입속으로 들어가 이내 목구멍을 막아버린다. 그렇게 억지로 삼키어진다.
왜일까. 그래, 나는 겁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 순간, 내 자신이 이 정도밖에 못 견디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되려 겁 먹고 있었다.
왜일까. 그래, 나는 내가 이 정도에서는 지친다는 것을 인정하지 싫었나보다.
나는 더 할 수 있는데, 이 정도 쯤은 밤을 새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눈이 감긴다. 머리가 핑 돈다. 졸음이 몰려온다. 몸이 내게 말하는 걸까, 자고 일어나서 해도 되니까 이만 자라고. 그치만, 나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이 생각으로 잠이 든다.
나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나의 영웅, 부모님도 너무나 안쓰럽지만, 어느덧 나 자신도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죄스러웠던 건가. 타인에게 듣고 싶었지만, 내가 털어 놓지 않아서 듣지 못했던 그 말을, 유일하게 나의 부재와 심란을 알고 있는 나 자신에게 해 줘야지. 그래, 내가 나에게 말해 줘야지.
예정아, 충분히 지칠만 해. 자고 일어나서 해도 충분해.
이제, 잠을 자야지. 푹신한 베개와 보송보송한 이불을 덮고 푹 자야지.
그리고 개운한 아침을 찾으면 나의 제목의 초성 정도는 알 수 있겠지.
그러고 나면 부재한 나의 부제도 점차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