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야지.
응애, 부산의 어느 병원에서 내가 태어났다. 더웠던 여름 어느 하루. 여름 날 밤에 나는 세상에 나왔다. 이 아이는 자라서 무엇이 될지, 나의 영웅인 아빠와 엄마는 알고 계셨을까.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바랐다고 하셨다. 대단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그것이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유일하게 바랐던 점이다.
여름 날 밤에 태어난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달라는 부모의 소박한 바람만을 안은 채 자라고 자라서 자신의 상상을 글로 그리고픈 꿈을 키웠다.
부산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사투리로 지저귀던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다. 살코기보다는 해산물을 더 좋아하지만, 우습게도 알탕은 먹지 못 했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우습게도 헤엄은 못 친다. 뚜렷하지만, 어딘가 웃음을 담고 있는, 나는 그런 모습으로 점차 자랐다.
그 모습 그대로 자란 나는, 늘 웃고 있었다. 울상이면 뭐가 나아지지, 싶어서 늘 웃상으로 살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생각으로 부탁을 받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 주었다. 점점 나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상처 받는 내가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 한 마디에도 눈치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 마주한 나의 그런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우스워 보였다.
이런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스스로 지쳤다. 현재의 나를 감당하기도 버거웠던 위태로운 열 아홉을 보내고 있던 나는, 나도 사람들이 내게 그러는 것처럼 나의 힘듦을 털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씁쓸하게도 나는 타인에게 나의 힘듦을 털어 놓았던 적이 없었다. 힘들어도, 상처 받아도 늘 나 혼자서 이 상처가 가시기를 기다렸다.
나에게는 구멍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바랐던 소박한 소망 만큼 소박하게 살아갈 줄 알았던 나는 구멍을 원했다. 그래, 나에게는 구멍이 필요했다. 나의 답답함과 숨막힘을 가득 뚫을 수 있는, 그런 깊은 숨을 내쉴 수 있는 커다란 숨구멍. 어릴 때 막혀버린 나의 머리 위 자리했던 숨구멍을 다시 내고 싶었다. 머리 위에 다시 구멍이 뚫리면 벅찬 숨을 다시 고르게 내쉴 수 있을까.
아무리 깊게 내쉬어도 무언의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더 더, 더 크게 숨을 들이 마쉬고, 내뱉었다. 나아지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만, 고프지 않았다. 세수를 하다가 거울 너머로 마주한 내가 떠오른다. 눈 아래가 어두웠던 나의 얼굴을 그제야 마주했다. 지쳐 보이는 내가 안쓰러웠다. 모두들 이 시기에 이렇게 지치고, 힘들고, 견디며 살아 간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의 벅찬 지금은 합리화되지 못했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나의 감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문득 떠올랐다. 나는 나의 상상을 늘 그리고 싶어 했다는 것을. 내 손에는 문제를 푸느라 놓을 수 없었던 볼펜이 쥐어져 있었다. 연습장에 무작정 썼다. 글을 썼다. 지금 내가 어떤지, 어떤 심경인지 글을 썼다. 듣고 있던 노래가 서정적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글을 쓰는 동안 내 눈에도 구멍이 뚫린 듯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않았다. 그저, 지금 나를 글에 담은 것이 전부였다. 그게 전부였는데, 나는 그것이 참 서러웠나보다. 어떠한 위로도 받지 못했는데, 나는 비로소 숨을 쉬고 있었다. 벅찬 숨이 아닌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야 알았다. 털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위할 줄 알아야 타인도 진심으로 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후부터 나의 숨구멍은 글쓰기가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글을 썼다. 낯선 풍경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걸었던 나를 글에 오롯이 담았다. 그렇게 나의 한 해가 담겨 있는 글들을 엮어서 책으로 독립 출판했다. 스무 살의 내가 담겨 있는 나의 글 그리고, 나의 책. 하마터면 고등학교 4학년으로 단정지을 뻔했던 나의 스무 살. 숨구멍을 찾은 덕에 나의 스무 살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알 수 있었다. 내 주변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감사한 분들인지. 책을 출판하고, 축하를 받은 그때의 울컥함은 내가 지칠 때마다 떠올라 나에게 늘 힘이 되어 주겠지.
나의 엄마와 아빠는 알고 있었을까. 대단하지 않아도 되니,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바랐던 딸아이가 이러한 시작을 할 줄을.
나는 바다를 좋아하지만, 헤엄을 못 친다. 하지만, 내가 바다를 좋아한 덕분에 바닥을 보더라도 드넓은 바다를 눈에 담았다.
나는 하늘을 좋아하지만, 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늘을 좋아한 덕분에 하늘을 헤엄치고픈 꿈을 꾸었다.
나는, 부모님의 바람이 불어 와 준 덕분에 건강하게 자라서 바다를 눈에 담고, 하늘을 헤엄치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이제 나는 첫 책을 출판했다. 서툴었지만, 나의 첫 시작은 울컥하고, 감사한 완성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시작을 경험하겠지. 그리고 이제는 나를 믿고 다짐할 수 있다. 그 시작에는 감사한 분들과 늘 함께하기에 주저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