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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May 05. 2020

나는 과제할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말해봤자힘들다는말뿐일테니.


음파음파, 어푸어푸. 또다시 나는 바닷속에서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다. 어느정도 헤엄을 치다보면, 자그마한 섬이 보인다. 오랜 시간 열심히 수영을 하느라 지친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어 그 섬으로 향했다.


후하!


섬에 도달하고 나면, 숨을 크게 내쉬어야 한다. 촉박하게만 쉬느라 깊은 숨을 내쉰 적이 없기에 어디라도 쉴 수 있는 곳에 닿으면 깊은 숨을 머금고 내뱉어야 한다. 슬프게도, 이 섬은 너무나 자그마한 섬이다. 열심히 헤엄 쳐 온 거리는 그렇게나 길었는데, 이 섬은 단 이틀이면 가라앉아 사라지고야 만다. 이틀이 지나면, 나는 다시 바다에 빠져 가라앉지 않도록 팔다리 그리고 고개를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나의 수영 실력은 한 마디로 말하면 물에 뜨는 것만 간신히 할 수 있다.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멈췄다가는 가라앉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가 부족한 실력으로 헤엄을 칠 때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 있다.





절대 말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수영은 힘들다. 그렇기에 수영할 때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힘들다'라는 말이 전부이다.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내가 가장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섬이 보이고, 섬에 다다랐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다 해 간다!', '거의 다 했다!'


그래, 나는 지금 과제 속을 헤엄치고 있다. 다들 그렇겠지만, 다들 이렇게 힘든 지금을 견디고 있겠지만, 털어 놓고 싶었다. 닷새를 달려서 꿀같은 주말에 도착하면 짧은 쉼을 만끽한다. 비록 이틀에 불과하지만, 유일한 쉼이다. 닷새는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더니, 이틀은 역시  짧았다. 당연히 닷새보다 적은 날이기 때문이겠지.


과제를 하는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대신에 늘 음악을 틀어 놓는다. 자판기 소리와 책이 넘겨지는 소리 외에 유일한 사람 목소리였다. 과제는 해야 하지만, 하기 싫었고, 그렇지만 놓을 수 없었다.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하는 동안에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들려 오는 노래 가사에 '과제 싫다', '과제를 왜 해야 할까' 등으로 개사하여 부르며 하기도 했다. 그 순간 전화가 왔다. 거실에 있었던 동생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예정 - "왱."
동생 - "시끄럽다."



나의 노래는 그렇게 그쳤다. 가사의 상당 부분를 과제 하기 싫다 등의 내용으로 개사해버린 노래는 나의 가족도 힘들게 하는구나. 그래, 나는 견뎌야지.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나는 왜이리도 유난일까.


작년, 스무살이었을 적에 나도 이런 상황과 마주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모두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지친 나는?


모두 견디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내가 지쳐 있다는 것을 털어놓고, 나를 보듬었다. 나는 스물 한 살이 되었다. 한 해 동안 나를 보듬었던 덕분에 조금 더 자란 스물 한 살이 되었다.



나라고 왜 못할까.



나는 다들 견디고 있는데, 나라고 견디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순간의 감정에 북쳐서 하마터면 놓아버릴 뻔했다.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처음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 나도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놓아버릴 줄 몰라서 매일이 똑같은 게 아니었다. 모두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저마다 다르지만,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서 같은 일상을 견디고 견뎌내고 있었다.


비록, 그 틀을 엇나가는 것은 아주 자그마한 용기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용기에 지켜야 할 존재를 배재하기란 쉽지 않다.


그 용기로, 무던히 견디고 있는 이에게 감사를 건네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 한마디면 틈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아물어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던한 게 아닌 것 같다. 내 상황으로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니 알 것 같다. 견디고, 견디는 중이기에 차마 아무런 말도 못하 게 아닐까. 작은 틈이라도 생겨서, 그 틈으로 새어버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될까봐.



미련한 게 아니에요.
지켜내고 있는 거랍니다.



그대가

견뎌

지켜

주고

있는

것처럼.



용기가 없어서 힘껏 말한 적은 없지만,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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