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그때그때 살아가는 그때살이
잠시 나갈 일이 있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 창문 너머로 바라본 바깥이 화창했다. 새삼 아스팔트 바닥이 이렇게 예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종강 덕분인 것 같다. 아스팔트의 까끌까끌한 질감이며, 듬성듬성 연한 회색이 섞인 것만 같은 색감도 이제 보니 새롭다.
학기 중 버스 안에서 본 저 회색 바닥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를 탔을 때에는 저 회색에 마치 잡혀 먹힐 것만 기분이었다. 하루는, 아예 그냥 저 회색에 먹혀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회색 바다는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만약 존재했더라면 아마 성분이 콘크리트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는 복수 전공을 바꿨지만, 바꾸기 전 (구)복수 전공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학교 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늘이 아닌, 저 회색을 보며 걸었다. 그렇게 바닥을 보며 조심히 걸었는데도, 종종 신발 앞 코에 무언가 걸려 휘청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짜증을 감내했다. 짜증이라는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걸 경계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짜증'이라고 부를만 했다.
먼지가 고인 것만 같은 학기가 지나고 종강이 찾아 왔을 때, 나와 늘 거리가 있던 등산을 해 보았다.
등산객들의 편안한 걸음을 위해 나무로 된 계단이 놓여 있었고, 그 위를 걸었다. 혹여나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바닥을 보며 다녔다. 그러던 중 하나의 틈을 보았다. 안전한 계단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던 삐쭉 틈. 뭔가 이번 학기를 보낸 내 모습 같았다.
안전한 걸음 같았지만, 그 사이에 난 자그마한 틈에 그만 넘어져버리고 만 나의 모습. 나의 본전공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있다.
모든 문제는 사소한 데에서 비롯된다.
시나리오를 배우는 수업에서 해 주신 말씀이다. 어쩌면 저 계단은 모든 세상에 대입해 보아도 전혀 낯설지 않을 것만 같다.
모든 게 순탄해 보이더라도 그 속에서는 불가피하게 틈이 존재하고, 그 사소한 틈으로부터 문제가 비롯되는 건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배워지게 된 지혜가 아닐까. 나는 그 틈을 견뎠을까. 그 틈을 헤쳐 나왔을까. 모르겠다. 비록, 틈을 견뎠다고 내 입으로 자신 있게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사람들은 내게 견뎠다고 해 주었다. 조금 다른 의미로 나는 나의 (구)복수전공으로부터 헤쳐 나왔다. 그 당시 수업 때 다친 나의 발목은 아직도 간간이 아프기야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집에 가면 나의 도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의 살찐이는 늘 한결같이 나를 바라봐 주고 있을 테니까.
초록 빛들 사이로 노오한 색감을 보았다.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주변은 서로다른 초록으로 가득했고, 눈부셨다. 왜 초록을 두고 생명이라 하는 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오래 살아야 한다는 데에 의미를 두지 못했다. 이왕 사는 거 당연히 내게 주어진 만큼 왕창 살다 갈 테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오래 산다는 자체로는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었다. 이렇게 예쁜 초록을 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 나는 살아 있다. 이렇게 살아 있다.
집에 가는 길에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노을을 봤다. 얼마만에 올려다 본 하늘일까. 예쁘다.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노을을 봐야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