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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Dec 08. 2022

빈 자리가 생겼어.

내 눈물은 어쩌면 비눗방울이 되기 위해 흘렀나

이사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 간다. 무척이나 많았던 짐 만큼이나 무거워진 마음. 그 마음이 불러 온 미움이 만들어낸 다툼 섞인 하루를 매일 견뎠다.


그치만 우리는 작아질대로 작아져서 더욱 소중해진 가족이었기에 화해하고, 목 놓아 울며 서로를 이해해야만 했다. 속상의 무게가 역설이라도 된 듯 눈물이 말라가는 동안 이제는 좋은 기억만 품을 비눗방울을 피웠다.



발코니에도, 좁은 집 안에도 공간들이 모두 생겼다. 짐을 치우고 치워서 마련한 공간이지만, 공간이라는점은 확실했다. 발을 디딜 틈이 있고, 편안히 몸을 누일 곳이 생겨났다.


한 명 한 명이 짐처럼 여겨졌을 때, 그런 한 명 한 명이 다같이 몸을 움직여 만든 공간이다. 그래, 우리는 결코 서로의 짐이 아니었다.



아직은 짐이 가득했던 사진을 간혹 본다. 볼 때마다 그당시 숨이 막혔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왜 굳이 나는 과거를 찾아보는 걸까. 그럼에도 지금이 훨 낫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일까. 그토록 지겹게 싸웠던 이전을 생각하면 금세 답답이 만무했던 그당시로 되돌아간다.


집 안에 짐이란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꽤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구나. 서럽게도 사람마저 짐이라고 여겨졌으니.



집 안에도 이렇게나 가득했던 짐들이 치워지고 자리를 잡더니 편히 누울 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이 집은 꼭대기 층이다. 고이는 눈물 만큼이나 목이 메이고 내 얼굴도 덩달아 무거워진 탓에 바닥만 보고 지냈는데, 어쩔 수 없이 하늘을 보고 산다.



내가 나가서 돈이라도 벌면 청소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이 좁은 집을 마음 편히 치울 수 있을까. 이 단순한 생각으로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출판사 공고에 지원했다.


감사하게도 연락이 와서 1차 면접을 마치고 2차 면접까지 보고 왔다. 최종 결과만을 기다리던 중 서럽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좁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누울 공간만 겨우 있는 우리 집. 빠르게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엄마를 위한 게 아닌,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일하는 시간 동안은 이 집에 머물지 않을 수 있으니. 그걸 바랐구나. 멍하니 연락을 읽고 있는 내가 가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미웠다. 나는 끊임없이 시도하고, 시도했는데 왜 아무런 일이 안 일어날까. 미워할 존재가 없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아직 졸업하지 않아서? 나를 휴학하게 한 사람이 누구였지, 엄마였지. 그럼 나는 엄마를 미워해야 하는 건가. 생각을 멈추었더니, 휴학하고 싶지 않다고 끝까지 우기지 못한 내 탓이었다. 아무에게도 잘못은 없지만, 내 탓은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되는 듯하다.


나는 이제 출판사를 지원하지 않아야지. 열정 하나로 모든 상황들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걸 이렇게 실감한다. 나는 학생 답게 마저 학교를 다니고, 이름부터 예쁜 코스모스 졸업을 할 때 즈음에 내가 선호하는 분야를 지원해야지. 그래, 나는 코스모스가 필 때 즈음에 함께 피어날 테야.



엄마랑은 여전히 다투고 다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이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소한 무언가에 기어이 자주 틈틈이 행복해질 테지. 이제는 눈물을 뚝뚝 흘려도 바닥이 아닌 하늘을 본다. 얼굴 위로 비가 주룩 내려도 빗물은 투명하니 빛을 받아 반짝이고, 반짝임의 주체 역시 나임을 깨닫는다.


나는 이불 속을 사랑해서 집에서 별명이 번데기이니까 코스모스가 다가올 때 나비가 될 테야. 지금의 애매하게 짧은 단발머리가 아닌 정돈되어 보일 정도의 길어진 머리카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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