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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May 11. 2023

어쩌면 나는 영화 속에 살고 있을지도 몰라

언제쯤 내 마음 둘 곳에 다다를까


잔뜩 좁아진 우리 집. 잔뜩 좁아진 이 집의 장점을 이야기하라면, 감사하게도 다양하다. 아주 많음을 한 문장으로 함축해 보면 ‘행복할 순간이 모두 있다’ 라고 목 메이게 이야기할 수 있다.


작지만, 참 예쁘고 귀여운 잠시 머물다 갈 지금의 우리 집. 엄마와 동생도 있고, 나의 포근함인 도마뱀과 고양이도 있다. 있어야 할 모든 게 있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랑들이 모두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이리 커다란 숨이 필요하고야 말까. 숨 통이 트이는 발코니에 앉아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삶은 왜이리 영화 같을까. 행복할 때가 당연히 더 많지만, 가끔 찾아오는 묵직한 틀어짐이 내 호흡을 가로챌 때가 크다. 극적인 상황들의 연출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눈 감았다 뜨면 새로운 풍경이길 간절히 바란다.


할머니와의 오랜 다툼을 끝내고 세 모녀가 밖으로 나와 새로운 공간에 자리하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길 기대했다. 아쉽게도, 엄마와 동생의 우울은 어째서인지 깊어져 갔다. 새로운 환경에 놓여지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산을 마주해야만 하나보다.


오랜 우울증으로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우리 엄마. 젊었을 적 이곳저곳을 누비며 맛난 음식점을 알려 주었던 우리 엄마의 웃음을 누가 앗았을까. 내가 알고 있던 모성의 모습이 아니었던 할머니일까? 아님, 엄마 자신 조차 엄마의 모습이 서러운 엄마 스스로일까.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엄마와 동생은 같이 있어서도 안 되고,
각자 혼자 있어도 너무 힘들어요.

엄마와 동생의 우울증이 심해짐에 따라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딸로서의 어깨도 점차 무거워진다. 너무 예쁘고, 소중하고, 안쓰러운 우리 엄마. 내가 만약 당장 내 친구처럼 평범한 부모님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이제 막 취업하고 기분이 좋아진 동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좀 체계 있는 데를 갔어야지.


나는 동기 중 가장 빠르게 회사에 들어갔으나, 두 번 모두 상처 받고야 말았다. 올바르지 못했던 회사의 잘못이라고 얘기해 주지 않은 채 내게 촉을 돌렸다.내 동기처럼 건물주이고, 대학 교수님이신 부자 부모님을 만났더라면 내가 짊어진 무게 하나 없이 졸업하고 느긋하게 회사에 들어갔으면 달랐을까. 이런 무의미한 자문을 던져본다. 애석하게도 내게 나의 부모님은 위대하고, 영웅이고, 안쓰러운 나의 안식처이다. 너를 보면, 애썼던 나의 발자취가 고작 헛걸음으로 묘사될 뿐이다. 그래, 이렇게 동기와 친구 사이에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구나.


숨통이 트이고 싶으면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볼 때마다 현실을 잊고, 내가 주인공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다. 영화가 끝나면, 다시금 소중한 나의 엄마와 동생을 눈에 담는다. 영화 마케터 직무를 언젠가는 도전해 보아야지, 마음에만 담아 두었는데 그 시기가 한 학기가 끝난 후로 앞당겨진 듯이 다짐을 하게 된다. 잔뜩 혼나고 상처 받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혼나는 동안 얻게 될 숭고함은 과연 무엇일까. 어렵고, 힘들겠지만, 이를 견디며 나의 무기로 갈고닦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단단함을 아직 한 학기 남은 학생일 때 다듬어야겠다.


우울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족과 함께하는 그 가족 역시 마음이 도려내어지는 것만 같다. 무수히 싸우고, 또 화해하고. 그때 흘려보내는 눈물의 호수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싸운 시간 만큼, 그 속에서 소리친 만큼, 다시금 서로 안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마음 만큼, 절대 도망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되새겨 준다. 우리 엄마와 동생이 우울에서 힘껏 헤엄쳐 나와 수면으로 올라 온다면  내 마음이 얼마든지 도려내어지고, 뭉드러져도 괜찮다. 얼마든지 고아져도 괜찮다.


도려내어진 내 마음의 자리가 엄마와 동생이 편히 마음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만 한다면,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내게 세상을 준 우리 엄마, 힘든 순간에도 내 걱정만 하는 우리 엄마. 언니가 있어서 좋다고 늘 얘기해 주는 내 동생. 둘은 간혹 커다랗게 내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잠깐만 미울 뿐, 변함없이 소중한 우리 엄마, 내 동생.


마무리에 온기가 담겨있는 걸 보니, 내 삶은 영화가 많구나. 이제는 극적인 행복도 자주 만나게 해 줄래?



P.S.

우울증 환자 분들, 그리고 그런 가족을 보며 목이 매이고야 마는 환자분들의 가족 분들을 모두 애쓰셨습니다. 힘들고, 마음이 아팠던 시간 만큼 우리 금방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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