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다짐이 아니더라도 괜찮아.

커다란 공간 속 다른 사람들, 비슷한 모습.

by 그냥예정




오랜만에 북카페를 갔다. 커다란 빌딩의 1층, 2층으로 이루어진 큰 규모의 북카페. 책, 사람, 음료, 그리고 빵도 많았다.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분위기는,



적당한 어수선함.



적절한 소음과 적당한 목소리의 조화였다. 조용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시끄럽지는 않았다. 큰 규모의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닮은 구석 하나 없는 사람들끼리 모인 커다란 공간. 닮은 구석 하나 없음에도 그 공간에 모인 우리의 모습은 비슷했다.





우리는 음료와 빵을 주문한 채
책이 아닌, 대화를 나누거나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책을 읽는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분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일을 하거나, 과제를 하고 계셨다.



북카페가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본래의 다짐은, 조용한 독서 공간이었겠지만, 그 공간이 다양한 사람들의 머뭄으로 채워지면서 본래의 의미는 변화한 듯 했다.



마음 편안한 대화의 공간.


어쪄면 삭막하고 공허하게 비어 있었을 공간이 책과 사람의 만남으로 가득 채워졌다. 비록 본래의 다짐은 순위에서 밀려났지만, 처음 가진 그 목표 덕에 텅 빈 공간이 수많은 책들로 꾸며질 수 있었다.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띈 작가님들의 책들. 북콘서트를 진행하신 작가님들의 책이었다.




처음에 가진 목표가 확고했던 덕분에 그 틀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편안한 대화의 장소가 되었던 카페는 독서 공간이라는 초심을 유지하며 대화와 독서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뚜렷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일의 끝에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또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을까.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걸었기에 더 넓어진 시야로 또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뚜렷하게 세운 목표들에 전부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얻은 점이 있다면 더 넓어진 시야와 더 많아진 문들. 이루지 못한 목표라도 그 목표를 바라보고 열심히 뚜벅 뚜벅 걸었던 덕분에 더 많은 손잡이들이 내 손에 쥐어졌다. 손잡이 조차 없어서 나는 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런 문들의 손잡이들.



걸음을 지속할수록 문을 열 수 있는 손잡이의 개수가 늘어났다.



목표는 길을 걷기 위한 동기이고,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길은 더 많은 문이 있음을 알기 위한 여정이고, 그 여정은 우리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알려 주는 것 같다. 열심히 걸어온 그 여정의 보답이 마음만 먹으면 열 수 있는 다양의 문들의 손잡이.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한 아쉬움은 또다른 조화를 통해 실현된다. 우리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 아닌, 더 다양한 가능성을 찾은 사람이었다.



문득, 고개를 숙여 두 손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는 새에 수많은 문고리들이 쥐어져 있었다. 손이 무거웠음에도 입꼬리가 올라는 것이 느껴졌다. 기뻤다. 많은 문을 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혹시 잊고 있지는 않은가요.
당신의 두 손에 고이 담겨진
수많은 문고리들을.



빛나고 있어요.

지금껏 걸어온 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