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친해져야 할 지하철.
아침에 눈을 뜨니 열이 났다. 38°c가 넘었다. 분명 해열제를 먹고 잤는데. 그래도 나는 일어나야 했다. 개강 전 마지막으로 모이는 OT를 가기 위해.
OT를 다녀왔다.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서. 왕복으로는 약 다섯 시간 정도. 오전 10시까지 도착해야 했고, 지하철로 가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오전 7시 15분에 집을 나섰고 33분에 도착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네, 저는 두 시간 통학러입니다. 네 번 환승해야 한답니다.
오전 8시 40분 경.
세 번째 환승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미 두 번째 환승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터라 세 번째 만큼은 조금 널널하길 바랐다. 벌꿀집 속의 애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들어왔다. 곧 문이 열렸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움직였던 발이 멈춰 섰다. 한정되어 있는 네모난 상자 안에 사람들로 가득가득 채워져 있었다.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음 차를 타야겠다, 마음 먹고 다시 기다렸다. 그 순간, 어느 한 분이 뛰어서 촘촘 했던 사람들 틈으로 쏙 들어가셨다. 어쩜 그렇게 쏙 들어가셨는지, 마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경이로웠다. 내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그 작은 틈이 그 분의 눈에는 보인 것이다. 곧 문이 닫혔다. 나는 아직도 그 경이로움에 빠져 멀뚱멀뚱 지나간 지하철을 바라봤다. 나도 조금만 더 탈 의지를 강하게 했다면 낑겨서 탈 수 있었을까. 다음 지하철이 곧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자각했다. 지금 내가 못 탄 차는 급행, 다음 차는 일반행.
오전 9시 40분 경.
집합 장소 바로 앞에 도착했다. 몸살이 걸려 있던 탓에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른 학과에는 신입생들이 모여 있었는데, 우리 학과는 집합 장소 기준으로 내가 첫 번째로 도착했다. 굉장히 걱정하며 갔는데, 굉장히 반겨주셨다. 명찰을 부여 받고 조금 기다리니 친구들이 슬슬 도착했다. 조금 모였을 때 친구들과 조를 이루고 학과실로 이동했다. 우리들은 모두 급급했다. 짝수를 이루기 위해. 두 명씩 앉도록 놓여진 책상과 의자에 빈틈 없이 앉기 위해.
오전 11시 경.
강당-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로서는 그 공간을 표현할 단어가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으로 모두 이동했다. 열심히 1부를 들었다. 머리가 계속 아팠어서 내용이 잘 1부가 끝나고 다시 대기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 약도 먹었다. 그날은 유독 할라피뇨가 매웠다.
오후 1시 30분 경.
2부가 곧 시작 되어 다시 강당으로 갔다. 신나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몸살 약 기운이 올라오면서 머리가 어지러웠고, 울렸다.
오후 6시 경.
2부도 끝났다. 나는 뒤풀이 신청을 안 했기 때문에 이제 집에 가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다시 대기실로 가니 본격적인 오리엔테이션이 시작을 위해 대기하라는 소식을 들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곧장 화장실로 가서 찬 물에 손을 씻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내 반지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바닥을 살폈지만, 당연히 없었다.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친구에게 얘기했다.
같이 찾아 보자.
아니. 나는 찾지 않을래. 나랑 연이 아니었던 거야.
친구는 웃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울었다. 좋아하는 반지였는데. 내 손가락에 잘 맞지 않았다. 조금 컸다. 그래도 신경쓰면서 끼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내게 컸던 반지는 나도 모르는 새에 훌러덩 빠져 사라져버렸다. 나랑 연이 아니었던 거야.
오후 6시 30분 경.
진정한 오티가 슬슬 끝나갈 때 선배가 물었다.
혹시, 오늘 뒤풀이 안 가시는 분 계신가요.
(손 번쩍.)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쩍 손을 들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당장이라도 말할 수 있었다. 다행히 선배는 안 가는 사람들의 인원을 확인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뒤풀이를 안 가는 사람은 미리 명찰을 반납하라 하여 명찰을 반납했다. 그리고 이제 가려고 했는데 1층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에 해산할 수 있었다. 내 걸음은 그대로 백스텝을 시전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친구들이 내게 말했다.
뒤풀이 안 가는 너가 부럽다아.
나는 미소와 함께 답했다.
재밌게 놀고, 맛있게 먹어!
1층에서 사진을 찍고, 역까지 같이 간 다음에 해산. 나는 바로 인사를 하고 지하철 역으로 쏙- 들어갔다.
오후 9시 20분 경.
드디어, 드디어 도착. 터덜터덜 걷고 걸어서 집에 도착. 오늘 나는 학교를 가는 경로를 외웠다.
스무살. 성인이다. 그런 만큼 내 의견 정도는 이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행사는 자유. 그 행상에 참여 여부 역시 자유. 나는 그 자유를 열심히 이해하고, 내 의견을 내비쳤다. 뒤풀이를 불참한다고 손을 들었을 때, 그 순간 나는 수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나는 그 날, 그 방법을 시행했다. 덕분에 나를 지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