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H O M E’
H O M E
뮤지컬, 연극, 전시회 등을 보고 소감문을 쓰라는 과제를 받았다. 뮤지컬을 보기에는 너무 비싸고, 연극을 보기에는 나의 두 귀가 지쳐 있었다. 매일 들리는 소음,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 아직 나는 사람들의 말소리로 이뤄진 예술을 접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렇게도 좋아하던 영화도 못 보고 있다. 조금은 조용한 예술을 접하고 싶어서 전시회를 택했다.
전시회를 검색했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 가려고 했기에,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학생 신분인지라 금액도 고려했다. 청담에서 하고 있던 전시회를 찾았다. 거리도 괜찮았고, 주제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무료 전시였다. 압구정 로데오역에 내린 뒤 4번 출구로 나왔다. 지하에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집, 집이 마중 나와 었었다.
발소리가 기분 좋게 들리는 나무 계단을 디디며 전시장으로 내려갔다.
조용했다. 사람도 없었고, 말소리 한점도 들리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 들리는 소리만 조용히 들렸다. 편안했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문장. ‘우리 집 앞에는 뭐가 있었지?’ 진심으로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우리 집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그 문구 밑에 놓인 탁자와 어여쁜 꽃들. 이 전시회를 기획했던 분께서 그리고 싶었던 집은 화목한 집이었을까.
전시회를 설명하는 문장들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고리를 만났다. 어쩜, 이리 아기자기할까.
반려동물도 만났다. 얼른 살찐이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사랑스러운 반려동물 옆에는 나무로 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앉으면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문장이 가득한 벽을 만났다. ‘어린 시절’, ‘집’. 두 단어가 나에게는 가장 오래 울렸다. 계속 단어들을 살폈다. 눈에 오래 담기 위해서.
여전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킨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만 변했다. 그 옆에는 큰 전신 거울이 그 집을 비추고 있었다. 거울 앞으로 걸어가서 나와 마주했다. 그리고는 인사했다. 훌쩍 자란 나와 마주하기 위해, 변한 것이 아니라 자라난 것임을 알려 주기 위해 나와 인사했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수없이 그렸던 의미 모를 그림들. 나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다. 그 그림들을 모아 두고 내가 조금 더 자랐을 때 꺼내 보았다. 예쁘지 않은 그림. 내가 참 그림을 못 그렸구나, 했다. 기회만 되면 그림을 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 마음을 접었다.
내가 더 더 자랐을 때 다시 그 그림들을 꺼내어 보았다. 다르게 느껴졌다. 어린 나만이 할 수 있었던 그 마음으로 그려나간 나만의 그림들이었다. 지금의 나는 절대 그릴 수 없는 그런 그림이었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있다.
여러분 그림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에요.
지금도 내게 이 말은 큰 힘이 되어 준다. 단 하나밖에 없는 내 그림. 삐뚤빼뚤 할 지라도 나의 그림이었고 단 한 작품만 존재한다.
작은 방. 세 면에서 비치는 내 모습. 그림 가득한 저 이불을 덮고 그림 같은 꿈을 꾸었겠지.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글쓰기는 거짓말부터 배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쓰라고 했던 일기와 그림일기는 숙제의 일환으로 담임교사가 모두 확인한다. 교사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일기이기에 없었던 일을 지어내거나 느끼지 못한 긍정의 감정들을 서술한다. 이와 더불어 그림일기는, 있었던 상황들을 그림과 글로 서술하며 자연히 감시의 일환이 된다.
전혀 해보지 못한 의심이었다. 없었던 일들을 일기로 쓴다, 친구들끼리 소리로 나도 그런 적 있어, 맞장구치며 웃었다. 그 과정이 감시의 일환이며 거짓말로 글쓰기의 시작이었을 줄은 의심하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들의 아이들은
일기를 쓰고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받는다.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쓰라고 계속
알려 준다면, 어쩌면 어떠한 이유들로 집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부디, 담임 선생님께 일기를 검사받는 숙제가 그 아이들을 구하는 데에 옳게 쓰이길 바란다.
책들이 가득했다.
어릴 적 나와는 다르게.
나는 책과 많이 친하지 않았다.
쓰고 그리기를 더 사랑했다.
고개를 돌려서 봐야 하는 문구 하나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일찍이 알고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세계를 가지고 그 속에서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푹신했던 소파. 마음이 편안했다. 더 앉아 있었더라면 졸음이 몰려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혼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집에 같이 살아도 저마다 다른 세계 속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을 헤엄치며 자신만의 집을 지었을 테니.
같은 풍경일지라도 서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며, 다른 각도의 풍경이 모여야 비로소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되듯이.
꿈을 가득 실어 함께 날아온 나의 열기구. 나는 아직 열기구 속에 있으려나, 아님 탈출했으려나.
마음 한켠에 있던 앙금이 사라졌다. 어릴 적 내 모습을 남겨 둘 걸, 후회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고향 집에 살며 순수하고 맑았던 어린 나를 이제는 놓아줘야 했다.
잘 가, 고마웠어. 어릴 적 ‘나’야.
마음 편히 쉼을 누리는 곳을 집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살 수도 없더라도 그 집에서 만큼은 살 수 있다.
이런 나는 아마 탄생과 소멸 그 중심에 있는 듯하다.
집으로 가는 길을 절대, 부디 잊지 마세요.
어두운 밤이어도 나는 기억한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을.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환기했다. 집 가는 길을 알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더불어 이 전시를 기획한 작가는 따뜻한 사람인 것 같다. 쉴 곳 없이 방황하는 우리를 기꺼이 자신의 공간, 자신의 어릴 적 세계 속에 지어둔 자신의 집에 초대해 주었다. 집에 스며든 작가 어릴 적의 추억들을 들려줌으로써 우리에 말한다.
너에게도 이랬던 추억이 있잖아.
잘 자라온 거야. 잘 자라 주었어.
헛되이 살았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정말 잘 자라 주었다고. 이랬던 어릴 적의 네가 있었기에 이만큼 자랄 수 있었던 거라고. 결코 헛된 삶이 아님을 최선을 다해 말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전시회는 구경했다, 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작가의 집에 초대받았다고 느껴진다. 모르는 사람의 집이지만 집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쉬었다.
작가는 말한다. 집 가는 길을 잃지 말라고. 그제야 정신이 든다. 맞다. 이곳은 나의 집이 아닌, 작가의 집이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따로 존재한다.
이제 마음이 괜찮아졌어?
그럼 이제 너의 집으로 돌아 가자.
누구든 너를 기다리는 그 집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 떠오른다.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는 집이라 해서 공허한 집이라 할 수 있을까. 나의 집에 존재하는 모든 것, 사물이며 그 속의 공기까지. 모두 나에게 맞춰져 있으며 나로 하여금 놓인 자리들이다. 집 안에 있는 모든 부분들은 모두,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안락함 가득한 공기로 지친 나를 포근하게 안아 주고 있었다. 온 마음을 다 해 배웅해 주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
언제든 다시 문을 열면 가득한 온기로 너를
반겨 줄게.
이제 집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아, 부디 모두들 집으로 가는 길을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