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음이 풍기는 삭막함.

사람의 온기를 품을 수 없는 기계.

by 그냥예정


지하철은 삭막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한 곳에 머무는 동안 들리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기계음뿐이다. 온기 하나 없는 기계음이 지하철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5월. 44년간 성우의 육성을 고수해 왔던 코레일이 TTS로 교체하면서부터 점차 사람의 목소리는 사라져 갔다.


코레일 측의 이유는 이러했다.‘성우를 섭외하는 과정부터 음원 편집, 그리고 차량에 이식하기까지 한 달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로 인해 수정 부분이 바로 도입되지 않았을 경우 시민들의 불편이 우려되며, 시민들의 편의를 우선하여 즉시 대응 시스템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TTS로 교체하게 됨.’


시민들은 성우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에 대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아니냐며 기계음을 반대했지만, 코레일은 육성을 줄이고 기계음을 점차 늘려 가는 추세이다.


20여 년간 지하철 안내 음성 성우를 맡았던 ‘강희선’ 성우가 말했다. ‘기계는 감정이 없다.’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져 간다는 슬픔보다는 기계음으로 인해 삭막해질 사람들의 정서와 관계를 더 우려했다.


지금 우리의 지하철은 삭막하다. 사람들의 말소리 없이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인위적인 기계음이 유일하다. 충분히 삭막했던 지하철에서 들리는 몇 초 가량의 기계음으로 인하여 사회의 삭막함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그렇기에 우리의 사회 또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기계의 목소리에는 사람만이 품고 있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한다 하여 지금보다 더 자연스러워질지라도 사람의 온기는 품을 수 없다.


지하철에 몸을 싣는 다양한 사람들 속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인, 학생 즉 사회인들이다. 사회인들은 충분히 짜증 속에서 이 삶을 꿋꿋하게 살아간다. 짜증을 한 아름 품에 안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 상태로 지하철 속 기계 안내음을 듣노라면 한 음절마다 뚝뚝 끊기는 그 소리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몇 번 더 듣다 보면 거슬리기까지 한다. 성우의 육성일 때에는 직접 말을 건네며 길을 알려 준다는 느낌이 컸다. 그 덕에 훨씬 더 편안했다.


우리의 사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삭막해지고, 냉정해진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지하철에서는 그런 사회 분위기가 피부로 더욱 생생하게 와 닿는다. 사람의 온기 하나하나가 소중한 지금 이 사회 속에서 지하철 기계 안내음은 사회가 더욱 차가워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우리의 우려대로 사람의 목소리가 주는 온기에 대한 값을 줄이고자 재빠른 대응 시스템이라는 명분으로 사회의 삭막함을 더욱 조성하는 것은 아닐까.


성우는 우려했다. 감정 없는 기계가 사람에게 줄 영향을.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에게 삭막한 사회 속에서 잠시나마 온기를 건넬 수 있다면 그 값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자부한다. 우리의 사회는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따뜻해져야 한다. 기계의 차가움으로 번진 냉기를 거둬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살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감정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가 사회의 온기를 유도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목소리에 불과할지라도 사람의 육성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은 기계와 확연히 구별된다. 과연 지하철 속 안내 음성이 부자연스러운 기계음으로 교체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까. 굳이 자연스러운 사람의 육성 대신 대체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육성을 계속 유지할 경우, 지하철에 이식되기까지 총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이 기간 동안만 기계음으로 잠시 대체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기계음은 돈이 들지 않으니 한 달의 기간 동안만 대체용으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다.


시민의 다리가 되어 주고자 만들어진 교통수단인 만큼 당장의 이익보다는 시민들이 잠시 머무는 동안에 따뜻함을 얻어갈 수 있도록 온기 가득한 방안이 나오길 기대하고 싶다.


현재는 서울교통공사에서만 사람의 정서가 풍겨지는 성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리워하는 사람의 목소리. 재빠른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 속 새로 등장한 딱딱한 기계음. 기계의 차가움이 번져 우리의 정서와 사회를 더욱 삭막하게 만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조금이라도 더 시민을 토닥여 주고 싶다면, 온기가 묻어나는 사람 목소리가 우리의 길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기계음에 둘러싸여 충분히 삭막하게 살았으니 이제는 사람이 풍기는 정서 속에서 조금씩 따뜻해지는 사회를 기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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