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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 시즌 5 : 레이첼, 잭, 애슐리 투

by 그냥예정


넷플릭스의 화제작 '블랙 미러 시즌 5 ' 한 편을 감상했다.
블랙 미러 시즌 5의 세 번째 이야기



레이첼, 잭, 애슐리 투



뛰어난 창작력과 당당한 가사로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팝스타, 애슐리 O.

애슐리 O의 당당한 노래 가사를 사랑하는 애슐리 O의 팬, 레이첼.

늘 헤드셋을 껴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가는 레이첼의 언니 .

애슐리 O의 창의력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똑 빼닮은 애슐리 O의 인공지능 로봇, 애슐리 투.






'레이첼, 잭, 애슐리 투' 작품은 인간관계에 연연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도 나는, 제목에 드러나 있지 않은 또 다른 주인공 '애슐리 O'와 제목에 나타난 이름을 지닌 인물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꿈에서 영감이 떠오르면 일어나서 곡을 써요. _애슐리 O


우선, 애슐리 O. 이 아이는 고모에게 맡겨져 키워졌다. 밖에서는 대중의 사랑을 한 가득 받는 팝스타이지만, 무대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고모의 허수아비가 되고야 만다. SNS에 사진을 업로드할 때에도 무조건 고모 마음에 들어야 하는 사진이어야 할 정도로. 노래 한 곡 조차도 자신 마음대로 만들 수 없다. 애슐리 O는 말했다. 한 TV 토크쇼에서.



꿈속에서 영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모두 애슐리 O를 대단하게 바라봤다. '세상에, 꿈속에서 떠오른 영감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다니.', '정말, 천재 아니야?' 등등. 장면이 전환된 순간 의심이 들었다. 고모 마음에 드는 사진을 애슐리에게 보여주며 이 사진이 좋겠어, 라고 말하는 고모를 보며. 어쩌면 애슐리의 곡은 꿈에서 만들어진 곡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 고모의 말에 애슐리는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런 건 고모가 더 잘 보잖아."



고모는 스물두 살 때부터 애슐리를 키웠다. 자연스레 매니저까지. 애슐리의 변화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걱정된 듯한 고모는 애슐리에게 물었다. 너 괜찮니? 애슐리는 답한다. 괜찮다고. 이 대화를 통해서만으로도 알 수 있다. 애슐리는 고모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 조금씩 내비쳐 보이고는 있지만 그 감정은 고모를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투정에 불과하다.



애슐리가 꿈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받은 영감을 곡으로 옮기기 위해. 이 장면에서 잠시 주춤했다. 아, 진짜 꿈속에서 만든 노래들이구나. 애슐리는 자신만의 노트를 꺼내어 꿈속에서 보았던 가사들과 노랫말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랫말에 가사를 얹었다. 자막과 스피커를 통해 만났던 애슐리의 당당한 노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곡이었다.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에 더 가까운 가사였다. 애슐리의 음악 색이 변화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알았다. 애슐리는 지금까지의 곡은 꿈에서 쓴 곡이 아니다. 고모의 입맛대로 어쩔 수 없이 만든 곡들이었다. 애슐리의 이러한 심정 변화에 고모가 눈치 못 챌 리 없다. 고모는 애슐리의 방으로 올라와 애슐리에게 말했다. 평소 네가 만드는 노래랑은 다른 느낌인데. 그리고 또 묻는다.



"너, 괜찮니?"



애슐리는 말한다.



"괜찮아."



괜찮지 않은 아이가 무슨 이유로 계속 괜찮다고 말하는 것일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어 보인다. 꿈은 무의식의 집합소이자 장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들이 무의식으로 스며들어 애슐리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애슐리의 꿈속에 뭉게뭉게 피어났다. 그렇기에 애슐리의 꿈은, 애슐리의 진심을 뜻한다.



애슐리의 콘서트가 준비되었다. 하지만 애슐리는 문을 잠가 두고는 자신이 원하는 짙은 화장을 시도한다. 굉장히 어울려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모습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애슐리는 서랍 속에서 자신의 작업 노트를 꺼내어 지금의 부정적인 감정을 오롯이 글로 남긴다. 곧, 바깥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 오는 소리가 들리자, 애슐리는 급하게 자신의 노트를 서랍 안으로 숨긴다. 고모와 주치의가 따라 들어온다. 고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애슐리를 쳐다봤다. 고모의 눈에 비친 애슐리의 모습은 얼마 남지 않은 콘서트 장을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아이처럼 보인 것일까. 고모는 자세를 조금 낮추고는 애슐리를 설득했다.



"저 팬들이 얼마나 기다렸겠어."



애슐리는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다시 무대에 설 마음을 다졌다. 주치의는 애슐리에게 약을 내밀었다. 애슐리는 약에 의존하고 있었다. 고모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애슐리가 위태로운 상황임을. 그럼에도 고모는 애슐리를 압박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면, 애슐리는 그 약이 평범한 약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주치의가 그 약을 줄 때마다 애슐리는 약을 먹지 않고 통 안에 모아 두고 있었다. 애슐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곳에서 약은 제정신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대를 무기력화 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나타난다. 애슐리 그 자체는 고모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노래를 만드는 무한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으며 엄청난 부를 자신에게 안겨 주기에. 돈 벌어 오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애슐리는 안타깝게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이다. 고모는 이런 애슐리를 최대한 통제하고 싶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이 역시 안타깝게도 약이었다. 약은 굴복하지 않는 존재에게 사용하는 도구로 표현되었다. 어쩌면 이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 고모는 자신이 도구 없이 애슐리를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고모는, 도구 없이는 애슐리를 이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고모가 눈치를 챘다. 애슐리가 약을 먹지 않고 모으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작업 노트에 어두운 가사를 적어 놓은 사실, 그리고 요 근래 계약법에 관심이 많아진 것까지. 그 많은 사실을 한꺼번에 알아챈 고모에게 애슐리는 말한다. 어떻게 알았냐고. 고모는 답한다. 너 대기실에 CCTV를 설치했다고.



여기에서도 도구의 사용이 나타난다. CCTV라는 도구. 고모는 도구 없이는 자신의 조카, 애슐리를 이길 수 없음을 완전히 공식화했다.



고모는 애슐리가 약을 모아둔 통을 흔들며 말한다. 한꺼번에 털어 넣을 생각이었냐고. 애슐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불법적인 약을 한꺼번에 털어 넣어 불법 약을 처방하도록 한 자신의 고모를 계약법 위반이라는 명분으로 연을 끊어야지.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애슐리가 도구에 당하고 만다. 애슐리가 모아둔 모든 약을 갈아서 애슐리가 지금 앉아서 먹고 있는 음식에 넣어두었다. 애슐리는 과다 섭취로 인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뉴스 화면은 애슐리의 치료 소식으로 가득해졌다.



내 모습이 원래 내 성격이야. _ 애슐리 투


애슐리 O의 자아를 그대로 복사한 인공지능, 애슐리 투. 애슐리 투는 긍정적인 가면을 억지로 썼던 애슐리 O의 성격을 복사한 덕에 굉장히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애슐리 투는 일어나, 라는 말을 들으면 잠에서 깬다. 반대로 이제 자, 라고 말하면 잠이 든다. 뉴스에 가득한 애슐리의 치료 소식 속보에서 팬들의 응원이 담긴 애슐리 일어나, 라는 말을 듣고 의도치 않게 깨어났다. 애슐리 투는 애슐리 O의 뉴스를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오류가 나고야 만다. 자기 혼자 움직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생일 선물로 받은 애슐리 투는 레이첼의 말을 들어준 유일한 친구였다. 레이첼응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장난 애슐리 투와 자신의 언니 잭을 바라봤다. 몇 개월 동안 싸운 상태로 지냈지만, 지금 당장 의지할 사람은 언니밖에 없었다. 잭은 몇 개월 전, 사람이 아닌 기계와 노는 동생이 걱정되어 애슐리 투를 다락방에 숨겼던 적이 있다. 하지만 애슐리 O가 쓰러졌다는 그 뉴스를 듣자마자 커다란 우울에 빠질 뻔했던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애슐리 투를 돌려주었다. 몇 번이나 사과했지만 레이첼을 받아 주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레이첼은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언니는 그런 레이첼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무뚝뚝했던 언니가 동생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이다. 기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애슐리 투를 들고는 아빠의 작업실로 향했다. 쥐 퇴치기를 제작하는 아빠 덕에 기계는 가득했다. 잭은 컴퓨터와 애슐리 투를 연결했다. 그러자 사람의 뇌처럼 생긴 그림이 나타났다. 애슐리 투의 뇌였다. 뇌 그림을 자세히 보니 빨간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구간이 있다. 아무래도 저곳이 하자가 있는 곳 같았다. 잭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공간을 지워버렸다. 그러자 애슐리 투가 잠시 뒤 다시 깨어났다. 전혀 다른 성격으로.



내 엉덩이에 있는 것 좀 뽑아 줘!



전혀 다른 말투와 전혀 다른 목소리. 알고 보니 애슐리 O의 성격에서 긍정적인 부분들만 따로 모아서 그 안에서만 성격이 변화할 수 있도록 방화벽을 쳐 둔 것이다. 잭이 그 방화벽을 삭제해 준 덕에 애슐리 O의 원래 성격인, 파워풀하게 변화한 것이다. 아니,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성격이 원래대로 돌아온 애슐리 투는 고모가 모든 것을 꾸밈을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레이첼은 잭에게 부탁했다. 잭은 안 된다고 했지만 레이첼의 부탁에 넘어갔다.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야_ 잭, 레이첼


잭은 늘 레이첼을 걱정했다. 기계와 대화를 나눌 때는 물론이고, 언제나 걱정했다.

아무리 싸워도 둘은 가족이었고, 자매였다.




잭 덕에 또 다른 일을 꾸미고 있던 모를 막을 수 있었고, 의식 없이 쓰러진 줄만 알았던 애슐리 O 역시 구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도 먹고살 수 있어



블랙 미러 '레이첼, 잭, 애슐리 투'의 엔딩을 보자마자 이 문장이 떠올랐다. 의도가 이런 의도가 아닐지라도 나에게는 이러한 의미도 다가왔다. 애슐리 O는 무의식으로 가장한 자신의 진심, 그 진심이 진정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곡을 만들었다. 잭은 아무도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았던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 주는 애슐리 O를 만났다.



비록 공연을 하는 무대의 크기와 높이 그리고 조명을 달라졌지만 애슐리는 전보다 자유로웠고,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잘 먹고살고 있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음악, 그 음악이 애슐리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도구로 자신을 억압하려는 사람은 이미 도구 없이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격이다. 어쩌면 억압하려는 대상으로부터 이겨내야 하는 것은 억압하려는 사람이 아닌, 억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정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을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 모습은 누구보다도 빛나지 않을까.

화려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