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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승 Sep 02. 2021

토론이 있는 정치를 만든다고?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이 남긴 질문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이 남긴 질문


지난 6월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을 위한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가 열렸다. 이준석 당대표가 취임하자마자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됐음에도 전국 각지에서 561명이 지원할 정도로 큰 관심을 얻었다. 토론에 관심 없던 주변 지인들이 토론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여기저기에서 필자가 일하는 회사로 토론배틀 관련 문의가 올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이벤트였던 것 같다.


이번 토론배틀은 1차 자기소개 및 논평 동영상 심사와 2차 압박 면접 심사를 실시하여 16명을 추려내었다. 이후 2차까지 통과한 인원을 대상으로 16강 4:4 토론배틀, 8강 2:2 토론배틀, 결승전이라고 볼 수 있는 마지막 1~4위 순위 결정전을 진행하였다.


토론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 역시 이번 토론배틀을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다. 토론배틀 과정을 살펴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고, 향후 있을 다른 토론배틀에서도 참고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나마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흥미로웠던 점을 정리해보았다.



Plus | 좋았던 점


학력과 직업 제한 없이 만 18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국민의힘 대변인이 될 기회를 열어준 점

참가자 자기소개 영상, 압박면접 주요 장면, 토론 영상 등 토론배틀 행사의 거의 전 과정을 공개한 점
(다만 “탈락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감안하여 사전에 비공개로 협의되었다”라고 하나, 다른 지원자 영상과 면접심사 전 과정의 영상이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임. 영상 공개를 원하지 않는 참가자를 제외하고 공개할 수 있음.)

개인 간 토론뿐만 아니라 팀 토론 방식을 도입하여 토론의 팀워크 요소를 부각한 점
실제 TV 토론 등 공적 토론에서 팀을 이뤄 토론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이 아무리 잘해도 자신의 입장에 있는 파트너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상대측의 논리에 밀릴 수 있음.

대변인이 당의 공식 입장을 전하는 당의 얼굴인 점을 고려하여 토론뿐만 아니라 정책 브리핑, 논평 전달 등 대변인에게 요구되는 여러 요소를 토론배틀 행사에 녹여낸 점

(전반적으로) 국내 TV 토론과 타 토론대회의 논제보다는 토론의 방향성과 쟁점이 더 잘 드러난 편임.

예) 8강 윤석열 전 총장은 국민의힘에 조기 입당해야 한다
예) 모든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예) BTS에겐 병역 특례를 줘야한다.
예) 국민의힘 공직 후보자가 되려면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문자투표 50% (심사위원 점수 1000점 + 시청자 문자투표 1000점)를 통해 국민과 당원의 참여를 독려한 점.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설득해야 하는 최종 대상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대변인 선발에 국민투표를 한 것이 맞다고 보임.

토론배틀 대회라고 해서 아카데미 토론 형식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방송 등 실제 맞닥뜨리는 토론 환경을 토론배틀에 녹여내고자 한 점

예) 8강 난상토론: 2명씩 찬반으로 나뉘지만 4명의 후보가 개별적으로 발언을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 1:1:1:1 토론으로 볼 수 있음. 개인당 발언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패널토론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할 때가 있는데, 이에 대한 토론 역량을 볼 수 있음.

토론배틀 참가자 대다수 분들의 태도가 좋았음.
토론을 잘하는 사람 중에는 오만하고 토론 중에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데, 토론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겸손하고 태도가 좋으신 분들이 많아서 좋았음. 좋은 태도란 개방, 존중, 정직의 원칙을 지키면서 호의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 
매번 강조하는 것이지만

1) 설득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과는 구분됨. 상대나 청중의 호감을 얻어야 함.
2) 좋은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 토론에서 이기는 것은 부차적 목표
토론의 기술을 잘 구사하더라도 공격적인 사람은 토론에서 승리하여도 청중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
전투(=토론경기 승리)에 이기고 전쟁(=청중 설득)에서는 지는 격


Minus | 아쉬웠던 점


(영상 등 여러 과정을 공개하였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심사기준과 심사채점표를 공개하지 않은 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기회는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했다”라고 밝혔지만, 과정이 정말 공정했는지를 따져보려면 심사기준과 채점표를 공개해야 함. 또한, 심사위원 총점과 더불어 각 심사위원 점수를 공개하는 것이 좋음.

토론에 참여하는 인원을 선발하기 위한 압박면접의 필요성에 의문이 듦.  

1) 150여 명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에서 한 사람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을 뿐만 아니라 면접은 면접관의 주관적인 호불호에 크게 좌지우지되므로 압박면접을 생략하거나 후순위로 미뤄도 됐을 것으로 보임.
2) 공정하게 실력만 보고 대변인을 선발한다고 하는데, 압박면접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능력을 부각할 뿐 지원자의 실력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임.

일부 논제의 기술 방식, 단어 선택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음.
논제의 의도와 쟁점이 더 명확하도록 기술할 필요가 있음. (*8강 토론 주제 참조)

예) 16강 1부 토론: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예) 16강 2부 토론: 5차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

심사에 있어 더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총평을 해줄 필요가 있음.
토론에 대해 단순히 느낀 점만 공유하는 것은 참가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 이때는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토론에서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쟁점 위주로 정리해주는 것이 좋음.
이에 더해 지켜본 토론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총평할 수 있도록 하면 심사위원의 책무성을 높일 수 있음. 토론배틀을 통해 실력으로 대변인을 선발하겠다고 한 이상 심사위원도 자신의 승패 결정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함. (특히 국민투표가 없는 16강에서 매우 중요) 

- 좋은 심사위원: 토론의 쟁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찬반 간 비교 대조하며 심사평을 할 수 있음.
- 나쁜 심사위원: 토론의 쟁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토론자 간 오간 내용이 아닌 자신의 개인적 생각과 의견을 토론에 반영하여 승패 결과를 내림.

(국민 투표를 심사에 반영한 점은 좋았지만) 심사위원단을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어 보임. 
국민의힘 당론에 반하는 여당의 정책과 행보에 대한 논제를 토론에 부친 것을 감안하면,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정치인은 토론자의 논리가 아닌 자기 주관에만 치우쳐 심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음. 이경우 특정 논제에서 국민의힘 당론에 반하는 입장을  취한 토론자는 그렇지 않은 토론자에 비해 입증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음.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 토론배틀 심사위원을 대상으로 토론 심사 교육을 실시하고
2) 국민의힘 정치인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 정치인 또는 기타 전문가를 심사위원단에 포함하거나
3) 일부 논제를 조정하거나 다른 논제로 대체하는 등 진행 방식에 변화가 필요함.

4:4 토론 배틀은 개개인의 역량을 파악하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음.
보통 2명, 3명이 한 팀으로 진행하는 데 이는 개개인이 논리를 세우는 것과 논리적으로 질의응답하고 반론하는 것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임. 승리한 팀원 4명 중 2명을 떨어트리고 패한 팀원 중 2명을 8강으로 올리는 것보다는 3:3 토론 배틀 또는 2:2 토론 배틀로 진행하는 것이 더 객관적으로 개개인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 

8강을 진행할 때 심사위원단의 중간합계 점수를 공개할 필요는 없어 보임.
심사위원단 점수와 국민투표 모두 마지막에 공개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결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임.

지원자의 역량을 다각도로 파악하기 위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기에는 토론 시간이 다소 짧은 편임.
2:2 팀 배틀은 한 팀당 6분, 난상토론은 4명의 후보가 총 12분만 토론 진행함.


Interesting | 흥미로웠던 점


능력주의자가 그리는 '공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됨.
실력주의와 공정한 경쟁이란 무엇일까? 완벽하게 설계된 능력주의나 공정 경쟁이란 것이 있을까? "공정한 방법으로 오직 실력만 평가"한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만 하면 공정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번 토론배틀처럼 토너먼트 경쟁 방식으로 운영되었지만 대변을 선발하는 심사 과정이 전부 공개되지 않았다면? 

토론배틀에서 필요한 역량과 대변인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정확히 맞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임.
찬반토론에서 청중을 설득하여 승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변인을 넘어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공감과 소통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도 필요함.

토론배틀로 대변인을 선발한다고 했지만 즉흥 발표나 면접, 시사퀴즈, 아이디어 제안 토론 등을 포함한 점.
대변인이 갖춰야 할 역량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미션도 있었지만, 중복되거나 본 행사의 성격과 맞지 않아 의아한 미션도 있었음.

공정한 경쟁을 강조한다면 모든 참가자(면접을 본 150명)를 동등하게, 즉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것에도 고민이 필요해 보임.

20·30대 참가자의 약진. 국민의힘 기조국에 따르면 20대가 235명으로 41.7%, 30대가 178명으로 31.6%를 차지했다고 함. 본선 진출자 구성만 보더라도 20·30대 참가자가 다수로 기성 정치인들은 긴장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함. 






지금까지 토론 문화가 더 제대로 정착되면 하는 바람으로 생각나는 대로 '제1회 국민의힘 대변인 토론배틀'의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흥미로웠던 점을 적어보았다. 여러 관점에서 이번 토론대회에 대한 생각을 밝혔지만, 분명한 건 이번 토론배틀이 더 성숙한 토론 문화를 만드는데,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사람이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토론이 있는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이번 토론배틀 참가자들이 보여준 토론자의 자세나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선발된 대변인 분들과 다른 역할을 맡게 된 분들이 토론을 통한 합리적 합의가 활발한 정치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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