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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승 May 18. 2021

인공지능도 토론하는 시대, 인간의 토론은 어디로?

AI vs 인간의 토론 대결이 던져주는 토론거리

이세돌 9단과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 있었던 2016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 대국은 4승 1패 알파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년 뒤 6월, 사상 최초로 인간과 '프로젝터 디베이터(Project Debater)'라는 인공지능 간 토론 대결이 펼쳐졌다. 인간을 대표한 인물은 2016년도 이스라엘 토론 챔피언인 Noa Ovadia와 IBM에서 토론과 수사학 컨설턴트로 활동한 Dan Zafrir. 각 토론자는 '우주탐사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가', '원격진료를 확대해야 하는가'라는 논제를 두고 인공지능과 열띤 토론을 펼쳤다.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난생처음 보는 이 토론 경기에서 청중들은 AI의 손을 들어줬다. 체스와 바둑을 섭렵하고 이제는 복잡한 언어 사고 능력을 요하는 토론 경기에서도 AI가 인간에 맞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AI와 인간의 또 다른 토론 경기가 잡혔다. 인간이 이전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번에는 유럽 대학생 토론대회 우승과 세계 대학생 토론대회 준우승 이력을 자랑하는 Harish Natarajan이 나섰다. 토론 AI인 '프로젝트 디베이터'도 더 많은 데이터와 기계 학습을 통해 더 강력한 토론 기계가 되어 돌아왔다.


과연 인간은 지난 대결의 굴욕을 만회할 수 있을까?




한편, 토론하는 AI를 개발하는 일은 IBM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전에 진행한 체스 경기와 퀴즈쇼 참가를 위한 AI를 개발할 때는 주어진 데이터를 잘 학습시키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토론에서는 논리와 데이터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했다. 승패의 기준이 명확한 체스 경기와 퀴즈쇼와 달리 토론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그보다 더 복잡한 일이었던 것이다. 


토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단시간 내에 논제를 분석하고, 여러 정보와 데이터를 맥락에 맞게 가공해야 한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논지를 파악하고 적절하게 반론을 펼쳐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고려해 볼 때 AI가 인간에 맞서 토론한다는 것은, 그리고 토론에서 이긴 것은 엄청난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인간 대 AI의 두 번째 토론 대결은 어떻게 되었을까?

주제는 당일 현장에서 '정부가 유치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가'로 정해졌다. 논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도 추첨으로 정해졌는데,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찬성 측을,  Harish Natarajan은 반대 측을 맡게 되었다. 이는 여러 국제 토론대회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현장에서 주제를 공표하고, 약간의 준비 시간을 거친 후에 토론하는 즉흥 토론 방식이다. 준비 시간은 단 15분.(*영국 의회식 토론 형식의 준비 시간과 동일한테, 이 형식은 해당 토론자에게 가장 익숙한 형식이기도 하다.) 진행 방식은 입론 4분 - 반론 4분 - 마무리 발언 2분으로 연사당 총 1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윽고 800명의 관객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이 시작되었다. 먼저 방대한 연구자료와 통계로 무장한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말한다.  "유치원 보조금을 지급하면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더 많은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라고. 이에 더해 인공지능은 "교육 기회가 확대되면 지역사회 범죄율이 낮아질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인간 토론자도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만 유치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며, "중산층에게 정부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습니다."라며 찬성 측 의견에 맞받아쳤다.


30분여간의 열띤 토론이 끝난 후 청중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줬을까?




결과는 인간의 승리. 800명의 관객 중 인간의 발언을 듣고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 AI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토론의 승패는 어느 측이 더 많은 관객을 설득했는지로 정해졌다. 토론 전 청중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정부가 유치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이 79%였지만, 토론을 지켜보고 난 후에는 청중의 62%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유치원 보조금 지급에 반대하는 입장은 토론 전 13%였으나 토론 후에는 30%로 증가했다. 반대 측을 옹호한 인간 토론자가 더 많은 청중을 설득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인간과 인공지능 중 어느 측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었냐는 설문에는 80%의 비중으로 인공지능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토론에서 인공지능을 논리로는 당해낼 수 없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IBM 연구진은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신문과 학술자료 등 100억 개의 문장에 해당하는 언어를 이해하고 이를 지식으로 바꾸는 연구를 수행해왔다.”라고 밝혔다. 이미 지식수준은 한 인간이 알고 있는 내용을 넘어섰다. 중요한 건 인공지능이 방대한 지식을 활용하여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토론의 맥락에 맞춰 논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정보를 학습시키는 것과 그 정보를 맥락에 따라 논리적으로 구성하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2016년에는 초등학생 수준의 토론 실력을, 2018년에는 대학생 수준의 토론 실력을 보여줬다는 연구진의 설명을 고려해볼 때 인공지능이 인간의 논증력을 뛰어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렇다면 토론에서도 인간이 설 자리는 없어지는 걸까? 지금까지의 토론이 논리와 팩트 체크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토론에서 청중과 교감하는 능력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사람은 논리만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논리의 경연으로 보이는 토론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중을 설득하는 데는 논리 외에도 감성, 인품, 권위가 필요하다. 대화나 토론에서 자세, 표정, 목소리 톤 등 여러 요소가 상대방의 인상이나 호감도를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언어적/비언어적 요소가 의사소통과 설득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지만, 이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알고 적용하면 좋은 것'에서 모두가 '알고 적용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청중의 표정에 따라, 청중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같은 내용이더라도 맥락에 맞춰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청중과 교감하는 데 필수적인 것들이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까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토론을 통해 AI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최종 청자인 인간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므로 토론에서도, 설득에서도 교감의 영역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토론에서 관객들이 인간의 손을 들어줬지만 AI가 제시한 정보가 더 풍부했다고 답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동시에 프로젝트 디베이트의 형태 혹은 생김새도 설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2019 Visually Attractive, Inc.


청중에게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표정과 제스처를 보여준 인간과 달리 공기청정기처럼 생긴 '프로젝트 디베이터'에게 온전히 감정 이입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인간이 말하는 내용에 더 귀를 기울이고 호감을 가졌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몇몇 분석 기사에서 인간 토론자가 감정적으로, 수사적으로 토론을 잘 이끌어 나갔다고 하지만, 나는 이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토론하는 영상을 보면 인간 토론자 역시 평균적인 사람에 비해 과도하게 구조를 갖춘 말하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과 논리의 흐름은 매우 명확했지만 동시에 유머 등 여러 요소를 잘 활용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나의 추측이지만) 아마도 청중은 기계의 형태로 멀뚱히 서 있는 AI에 비해 인간의 형태를 한 토론자에게 동질감과 호감을 느꼈을 수 있다. AI가 하는 말이 사람의 말과 더 큰 대비를 이뤄 인간 토론자가 더욱더 설득력 있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나 확실한 건 '국제 토론대회 챔피언' 혹은 '토론 경기 최다 승리 보유자'라는 인간 연사의 권위가 청중을 설득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보여준 토론 실력과 경기의 결과는 토론과 설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다시 토론 경기가 열린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컨벤션센터로 돌아가 보자. 첫 발언을 맡게 된 AI의 입론을 모두가 숨죽여 기다렸다. 

 당신이 인간과의 토론 경기에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기계와 토론하는 건 처음일 테죠. 미래에 온 걸 환영해요. 
(I have heard you hold the world record in debate competiton wins against humans, but I suspect you've never debated a machine. Welcome to the future.)


프로젝트 디베이트는 예상치 못한 오프닝을 통해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토론 중에도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을 보고 싶은가요?"라는 식으로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맥락에 맞지 않고 어설프긴 했지만, AI가 인간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려고 한 시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만약, 아주 만약 이번에 프로젝트가 보여준 기술을 통해 우리 인간이 보다 효율적이고 편향에 치우치지 않은 의사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을 넘어 인간의 형태로 완벽한 이성과 감성으로 설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간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인간의 토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우리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 참조 자료

1. How it works - Project Debater - IBM Research AI, https://www.research.ibm.com/artificial-intelligence/project-debater/how-it-works/

2. IBM Project Debater - IntelligenceSquared Debate,  https://youtu.be/3_yy0dnIc58

3. [IBM 특약] 어서와~ AI와의 토론은 처음이지,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096857&memberNo=12494964&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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