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Minority), 다수파(Majority)인 주류가 아닌 비주류, 이른바 소수를 일컫는다. 어느 사회나 마이너리티들은 존재하고 그들의 삶은 다수의 삶과 똑같이 소중하다.
이성애자가 다수인 사회에서 동성애자는 소수자이고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이 주류가 되어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다문화, 다민족 출신자들이 소수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탈조선을 하는 순간, 우리나라 사람은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소수가 된다. 서구화가 된 이래 우리에게 주어진 디폴트 값이다.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잃지 않고, 되려 잘 활용해 주류인 서구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나 역시 십 년이 넘도록 남반구 호주땅에서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소수자로 사사롭지만 소소한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여느 인생처럼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동시에 공존하는 삶임에 분명하다.
요즘 내가 사는 다민족 국가 호주에서는 ‘문화적 시민성(cultural citizenship)’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화두가 되고 있다. 비주류라서 소외되었던 마이너리티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몇 달 전 호주 정부에서 VOICE라고 하는 이름하에 (정식명칭: Australian Indigenous Voice Referendum) 호주사회의 마이너리티인 원주민들을 위한 법적 자문 및 고문 지원 단체의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의 국회참여를 위한 대대적인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투표결과 NO(반대)가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결과였다.
호주사회의 전반적인 입장은 원주민이라고 하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법적으로 단체허용을 하고 그 입지를 강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현격한 ‘원주민 대 비원주민’ 구도를 양산하고 이는 곧 조화(Harmony)가 아닌 호주 내 사회분열(division)과 차별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기저다. 그래서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들어주고 허용할 것인가에 관한 건설적인 갑론을박이 호주 정치권에서 한창인 요즘이다. 분명 힘과 균형이 필요한 게임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마이너리티를 위한 대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그냥 부러웠다.
이렇게 내가 적을 두고 사는 호주에서는 주류사회의 다원화에 발맞춰 마이너리티들의 문화에 대한 관용범위와 절차를 열심히 논하는 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을 하기에 급급했던 나머지 소수자의 인권이나 비주류에 관한 교육과 사회적 논의가 정치권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눈치다. 종교단체, 사회단체, 언론미디어 등지에서 조금 언급이 되는 수준이고 정책적으로 법안과 체계를 논의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조선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부분의 우리는 주류적 인생을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마이너리티의 삶 즉 비주류 인생을 사는 것은 변방인생이고 낙오자의 삶이라고 교육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재외동포 750만, 재외국민 250만 시대라고 하기에는 글로벌하지 못하고 닫힌 느낌이다. 무엇보다 개개인들이 주류중심의 지배논리에 스며들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문화적 피식민자가 되어간다는 점이 참 폐쇄적이다. 집에서 부모님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사회에서 어른들이 무심코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가 결국 주류중심적 문화사고에 식민지화된 우리들을 재생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수여서 힘이 없고 대다수를 따라가면 반이라도 한다는 말은 기득권층에 의한 지배담론(hegemonic discourse)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디지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게다가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에서 마이너리티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오히려 주류들이 놓치거나 생각지 못한 관점을 제공해 주는 새로운 힘, 요즘 대세 아닐까.
주변을 살펴보면 주류적 시선에 갇힌 인생을 살며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한때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인지 다수의 시선이 아닌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소수의 시선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끄적여보고 싶었다. 과연 마이너 인생은 그저 불행하기만 한 건지, 아니면 원 없이 자유롭기만 한 건지, 그리고 인종적 소수여서 겪는 아픔을 어떻게 회복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한 회 한 회 천천히 풀어볼 생각이다. 조금은 거친생각들이 잘 다듬어져 또다른 좋은 매거진으로 탄생하길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