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지 못한 엄마는
딸을 애늙은이로 만든다.

by 레어버드

끝나지 않는 모녀 사이의 불공정 거래로 나는 애늙은이가 되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엄마의 시꺼먼 낯빛이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아빠도 똑같았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친할아버지께서도 연이어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가계부채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갈 즈음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계 살림이 미세하게 나아지면서 이층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엄마 화장대 옆에 있던 윤노리나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도 더 이상 주말 과수원에서 윤노리나무를 해오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삶의 모든 감정을 딸인 나에게 매일 같이 털어놓았다.

‘엄마 말을 너무 잘 알아듣는 딸이니까 얘기하는 거야.’

‘너니까 엄마가 믿고 말하지, 내가 어디에 가서 이런 얘기를 해...’

‘너 말고 딴 데 가서 이런 말 했다가는 집안 망신이야.’

‘너희 친할머니가 살아가실 때 그러셨어, 가족은 원래 겉으론 화목, 안으론 불목이라고.’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겉으로 화목하고 안으로 불목하면서 왜 가족을 만들어서 사는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넋두리는 십 대인 내가 소화하기에 참 버거운 주제들이었다. 남편 욕을 시작으로 시월드 흉보기에 19금을 벗어나 49금 이야기까지 나는 말 그대로 넋이 나갔다. '그러니까 너는 엄마처럼 살지마,' 혹은 '절대 엄마같은 인생 살면 안돼,'가 늘 결론이었다. 신체학대로 멍들었던 몸이 이제는 정서학대로 마음의 멍이 들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멍이 든 채 그 나이에 몰라도 되는 것들을 너무 빠르게 습득한 나머지 애늙은이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나의 뇌는 자연스레 결혼,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쪽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인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나에겐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소모적이고 힘들고 해봤자 후회만 가득한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애늙은이 영혼이 들어앉아 나도 모르게 철든 행동과 말을 곧잘 했다. 그러다가 가끔 화가 나면 되지도 않는 반항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커서 뭐가 될래?’라는 윤리 선생님 질문에 ‘왜요? 평생 연애질만 하다가 죽을 건데요?!’라고 대답했다가 출석부로 머리를 혼나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대학을 가서는 자기 파괴의 온상이었던 나만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 허우적댔다. (이어질 6화에 자세히 적어볼 계획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나서 시드니 대학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전공과목을 공부하다가 다음 세대로 트라우마가 전이됨을 알았다. 엄마의 트라우마는 나에게 전이되었다. 덕분에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나는 이미 소모된 에너지가 많아 앞으로 일어날 트라우마의 전이 과정을 감당할 육체적 정신적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트라우마를 다음 세대로 전가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어적 선택은 포기였다. 도저히 그 스트레스를 이기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자발적 삼포세대가 되었고 그 덕에 남반구 호주에서 고군분투 끝에 병약한 골드미스에 가까워진 삶을 살고는 있다. 무엇보다 멀리서 자유로운 골드미스의 삶을 살다 보니 과거 부모님의 무지했던 잘못을 원망하기보단 받아들이고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는 내적 여유가 생기기는 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택할 수 없었던 길에 대한 슬픔이 늘 존재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마지막 시구절처럼.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하지만 애늙은이 딸은 안다. 결혼, 출산, 육아를 포기하고 살겠다는 선택이 슬프지만 결국 자신의 숙명임을... 그리고 그 숙명적 선택 때문에 자기 파괴적(self-destructive)이었던 삶이 자기 보존적(self-preserving) 삶으로 바뀌었음을...


다음 화에 계속...

이전 02화가장 안전한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