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가장 안전한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긴다.
어른들은 가장 안전한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긴다.
모든 아이들이 정서적 어른 역할을 맡는 건 아니다. 특정 아이가 선택될 뿐이다. 나처럼...
그런 아이의 특징은 감정 감지력이 빠르고 상황을 읽고 분위기를 조정할 줄 알고 갈등을 줄이려고 스스로를 접는 특징이 있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무의식적으로 알아본다.
'아, 이 아이는 버텨주겠구나.'
그래서 더 기대고 더 맡기고 더 의존하고 더 미룬다. 우리 엄마처럼...
한때는 내가 강해서 엄마 아빠를 받아준다고 바보 같은 착각을 한 적도 있었다. 사실은 어른들이 이미 각자 불안했고 버거워 책임을 회피했던 탓이다.
이런 현상을 '정서적 부모화(parentification)'라고 한다. 시드니 대학 석사 공부를 할 때 심리학 학회지를 읽다가 알게 된 개념이다. 아이가 어른의 감정을 돌보고 분위기를 책임지고 관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 것...바로 정서적 부모화라는 패런티피케이션이다.
정서적 어른 역할을 하던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면 나처럼 도움 요청이 힘들고 쉬는 법을 모르고 '내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기를 40년째...결국 터졌다. 번아웃이 왔고 자가면역질환에 전신마취 수술에 여기저기 병명이 늘어갔다.
왜 나만 이런 역할을 했을까?
사랑이 없어서도 아니고 운이 나빠서도 아니고 팔자가 더러워서도 아니었다.
잔인하지만 정확한 답을 몸이 아프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에겐 내가 가장 안전한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커오면서 나는 소위 말하는 착한 딸이었다. 크게 반항하지 않았고, 감정을 크게 터뜨리지도 않았으며, 관계를 깨지도 않고 늘 참고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안타깝지만 엄마가 단 한 번도 ‘내 엄마(my mummy)’라고 느낀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이해해주고 받아줘야 하는 존재라고 느꼈고 그렇게 엄마의 신경질을 견디고 매를 맞았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나는 살아가는 이유였고 늘 착한 '엄마 딸(mummy's girl)'이었다.
불공정 거래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다. 그 덕에 나는 어른이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기 편이 되는 법을 깨우쳤고 평생 '싸우고 도망치고 얼어붙는(Fight - Flee - Freeze)' 생존 모드로 긴장 상태에 있던 내 몸의 신경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으로 경고 알림을 외치며 무너졌다.
고등학교 때였다. 성숙하다는 이유로 엄마의 물리적 학대가 정신적 학대로 바뀌면서 그야말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고 십 대인 나는 엄마의 감정을 들어주느라 내 감정을 돌볼 수가 없었다. 아니 철저히 내 감정을 숨겨야 했다. 숨이 막혔다. 엄마와 물리적 거리를 더 멀리 두어야겠다는 생존적 사고가 나를 일깨웠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정서적 어른 역할을 맡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비용으로 유명하다는 동네어학원 6개월 치를 몰래 등록했다. 나중에 엄마와 담임 선생님께 수능 외국어 영역 만점 받을 목적이라고 좋은 말로 설득했다. 덕분에 평생을 친구들과 두고두고 우려먹을 여고 시절 수학여행 추억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지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생존할 수 있는 영어 실력 만큼은 포기할 수 가 없었다. 처음으로 눈파란 원어민 교사와 프리토킹을 했던 순간이었고 지금도 그 자신감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을 때가 있다.
소중한 추억이 될 뻔한 여고시절 수학여행은 그렇게 나의 생존과 맞바꾸게 되었다. 살기 위한 나의 첫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판단하지 않는 어른, 서두르지 않는 어른,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어른, 쉼터가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이 있는 곳을 찾아 탈대한민국을 하기로 마음먹고 정말 열심히 헬로우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땡큐를 외우고 또 외웠다.
지구 어딘가에 있을 내 진짜 엄마(My real mother), 아빠를 찾기 위해서...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