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부모화(parentification)의 시작

by 레어버드

착한 우리 남매는 툭하면 그렇게 맞았다.

매번 푸시업 자세로 지름 2cm의 단단하고 질긴 윤노리나무 몽둥이가 ‘쩍’하고 부러질 때까지 맞았다. 실컷 맞고 나면 엉덩이에 시퍼렇다 못해 검붉은 멍이 들었다.

엄마는 펑펑 울면서 멍든 자리에 안티푸라민 연고를 발라주며 말했다.

‘엄마가 미워서 때리는 거 아니다. 다 잘되라고, 사랑해서 때리는 거야.’

나는 고작 여섯 살, 남동생은 네 살이었다.

여섯 살짜리 머릿속에는

‘가짜 엄마일 거야... 진짜 우리 엄마는 다른 곳에 있어,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진짜 엄마가 날 데리러 올 거야’라는 자위적인 생각들로 꽉 찼다.

그땐 몰랐다.

나를 키운 맷집이 정서적 부모화(parentification)의 발단이라는 것을...


365일 엄마 화장대 옆에 세워진 윤노리나무 몽둥이가 지독하게 싫었다. 무서웠다. ‘몽둥이 가지고 와!’ 소리가 끔찍했다. 나를 공격할 무기인 줄 알면서 가지러 가야 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마흔을 갓 넘은 지금도 엄마의 서릿발 같은 ‘엎드려뻗쳐!!’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엄마는 몽둥이가 부러지면 아빠에게 더 질기고 뻣뻣한 놈으로 해오라고 신경질을 냈다. 그러면 아빠는 주말농장에 가서 더 단단한 나무를 해오곤 했다. 아빠가 참 미웠다. 엄마가 가해자라면 아빠는 공범자였다. 성장하고 확장하고 숨을 쉬며 쉬고 싶은 나에게 유지·통제·안정을 추구하는 삶의 리듬을 가진 아빠는 너무 단단하고 차가운 흙이었다.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환경이 내게 무서움과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심장이 쪼그라들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밥맛은커녕 소화가 힘들었다. 맞는 게 무서워 억지로 먹으면 체하고 토하고를 수시로 반복했다. 덕분에 키며 몸무게며 늘 평균 미달이었고 이름 모를 병치레가 잦았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악몽에 시달려 이불에 지도를 그리며 컸다. 차일드후드 트라우마(childhoold trauma)였다. 그런 나를 고치겠다고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무당집에 보살집에 굿을 하고 점을 치고 엄한 돈을 쓰며 무식한 치유 방식을 고집했다. 그런 엄마가 싫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믿고 놔두는 아빠도 미웠다. 진짜 내 엄마, 아빠를 찾고 싶었다.


칠순이 된 엄마는 내가 물어보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가 왜 그렇게 때리면서 키웠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미안한 일이긴 한데 사랑의 매라도 맞아서 삐딱한 길로 안 가고 잘 큰 거라고 했다가 도통 알 수가 없다. 마음이 서늘하다.


사실 몇 년 전 말 못 할 오래된 통증으로 내가 사는 호주 주치의 선생님을 찾아갔다.

전문의 검진과 상담 끝에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로 골반기저근(pelvid floor muscle)이 뻣뻣한 상태에 허리와 엉덩이 부위에 통증유발점(trigger point)이 있다며 근근막 통증 증후군(myofascial pain syndrome)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과거 항우울제로 널리 쓰였던 약인데, 지금은 십 분의 일을 처방해 근육이완제로 사용하는 엔뎁(Amitriptyline)이라고 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기에 호주 물리치료 선생님과 함께 스트레칭과 운동요법도 병행했다. 많이 좋아졌다. 엔뎁을 끊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줄곧 매를 맞았던 엉치부위가 통증유발점이라는 의사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슬펐다. 하버드 출신 트라우마 권위자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 The body keeps the score 라는 책이 생각났다. 몸은 진실을 기억하고 트라우마는 그대로 몸에 남는다는 글귀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가 없구나...


사랑받고 싶다의 허기를 넘어선 나의 배고픔은 기대지 않아도 되는 안전함, 그리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해였다. 왜 나에겐 쉼터가 되어주는 어른이 없지?

주위 사람들은 내가 부모 잘 만나서, 부모덕이 좋아서, 비빌 언덕이 있어서, 그래서 마음 편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어느 만큼의 물리적 강압과 정신적 억압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는 평생을 ‘공부, 공부, 공부’, ‘돈, 돈, 돈’을 외치며 하나밖에 없는 딸, 아들을 누구보다 잘 키워보겠다며 당신의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 최선이 나에겐 독이었다.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엄마가 원하는 나를 보여주고 들려주며 눈치를 봤다. 안 그러면 맞았으니까.


아니 그렇게라도 해야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아니 그렇게라도 해야 안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동심에 빠져볼 새도 없이 KTX급으로 빠르게 철이 들어갔다. 무엇보다 작고 소중한 나의 내면 아이가 허기에 지쳐 서서히 말라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