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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추꽃 Jun 05. 2019

영화 <유리정원>을 보고

재연, 당신의 꿈이 안타깝다

스포 있음(<유리정원> 줄거리 포함)


집에서 <유리정원>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열두 살 때부터 한쪽 다리가 자라지 않는 장애를 앓고 있는 문근영(재연 역)은 어렸을 적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나고 자라 나무와 깊이 공감하는 능력을 지닌 과학도이다. 남들보다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보폭을 맞춰준 서태화(정교수 역)가 운영하는 대학 연구실에서 식물의 엽록체를 동물에 주입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엽록체를 미래 인공혈액이 되게 하리라는 꿈을 키워나간다. 피 대신 엽록체가 흐르는 인간은 나무처럼 물을 마시고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는 것 만으로도 살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애인이자 지도교수인 정교수는 제자의 이러한 독특함과 열정을 응원하지만 그에게 현실은 가혹하다. 연구실적이 부진해 연구실이 존폐위기에 놓이자 그녀의 엽록체 아이디어를 훔쳐 친환경 화장품, 더 나아가 엽록체를 활용한 대체에너지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재연의 후배 박지수(수희 역)의 손을 들어주며 투자자를 유치하게 된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정교수가 자신의 연구를 비현실적이라며 비웃는 투자자들과 똑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수희와 사랑을 나누는 것까지 목격한 재연은 배신감에 못 이겨 어릴 적 살던 숲으로 들어가 ‘유리정원’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실험을 계속 진행하게 된다. 정교수는 수희의 연구에 필요한 엽록체를 구하기 위해 숲으로 찾아오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가는 길에 나무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지는 변을 당한다. 그리고 숲 속에 쓰러져 있는 그를 재연이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삶이 곤두박질 칠 때에 그녀를 찾아온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김태훈(지훈 역)이다. 저명한 작가에게 표절 시비를 거는 동영상이 찍혀 작가로서의 미래가 위태로워진 지훈은 재연이 예전에 살던 집에서 우연히 전 주인 재연이 벽지에 써놓은 글귀를 보고 영감을 얻어 그녀의 인생을 토대로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재연 주위를 맴돌게 된다. “나는 나무에서 태어났다. 내 몸 속에선 언제부턴가 초록색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문근영이라는 배우를 좋아하는지라 그녀의 이번 연기 도전 또한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재연의 상황에 매우 안타까워하며 116분을 보냈다. 정교수와 지훈에 대한 분노, 재연에 대한 연민, 원석을 몰라보고 기다려줄 줄 모르는 성과주의 사회에 대한 성찰 등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던 점은 재연이라는 사람을 사회가 놓쳤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미친 사람으로 분류해 버리기엔 오히려 우리가 잃을 것이 더 많아 보인다. 비록 보는 사람에 따라 그저 한 명의 허황된 몽상가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재연은 참 열정적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누구보다 유능하며 미래지향적이다. 몸은 불편하지만 생활력이 강하며, 얼굴마저 예쁘다. 그래서 나는 재연이 기회가 있었을 때 조금만 그 당시의 현실과 타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사건이 터지기 직전 정교수와 재연이 함께 숲 속 유리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정교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정교수는 매우 난처 해하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사정하고, 통화가 끝난 후 연구실적 때문에 연구실이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이럴 땐 교수가 아니라 영업사원이 된 것 같다고 본인의 고충을 토로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엽록체를 대체에너지에 접목시켜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까지 한다. 하지만 재연의 반응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별 다른 말 없이 오히려 그런 제안에 본인이 더 실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정교수를 쳐다본다. 개종을 하라는 것도, 나라를 배신하라는 것도, 범죄를 권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상업적인 목적이 보이는 제안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나 환경오염이 이토록 심한 상황에서 인류와 자연의 미래에 대체에너지 또한 매우 중요한 사안인 것은 틀림없으며, 엽록체가 인공혈액 외 다른 분야에서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직 하나만 고집하는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잠깐 내려놓을 줄 아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덕목이자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이다. 우리는 나무가 아니지 않은가.

 

재연은 연구실을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는 애인이 힘들다고 할 때, 심지어 자신도 그 연구실의 구성원인 상황에서도 자기는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문제인 양 함께 고민해주지 않는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리게 걸어주어 재연에게 감동을 주었다던 그를 위해, 그리고 본인 스스로를 위해, 재연도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무의 목마르다는 속삭임은 그렇게도 잘 들으면서, 옆에 있는 사람의 고민에는 왜 그토록 무심했을까. 수희처럼 엽록체를 화장품에 접목시키는 아이디어는 아니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대체에너지 연구에 본인 성과를 접목시켜 연구실도 살리고, 유명세도 타고 발언권을 얻은 후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본인도 인정한 인공혈액 연구를 장기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 지훈이 자신이 표절시비를 건 작가가 실제로 표절한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자기 변호를 하자 출판사에서 하는 말에는 씁쓸하지만 뼈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에겐 질문을 하지 않아!” 

 

정말 재연이 엽록체 인공혈액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사회에서 내쳐지지 않도록 지켰어야 했다. 인류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본인이 굳게 믿고 있는 만큼, 당장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만큼, 자신이 그 투자자들에게 어떠한 계획과 전략으로 어필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재연의 발표 태도에 실망스러웠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단기 성과에 더 빨리 반응한다. 불확실한 먼 미래를 위해 당장의 수익을 포기할 기업이나 조직은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나의 소명을 지켜내고 싶다면 미련한 모습 보다는 보다 융통성 있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토리가 이렇게 전개 되었다면 우리에게는 <유리정원>이라는 아름답고도 가슴 아픈 영화가 탄생하지 못 했겠지만 재연에게는 해피엔딩이, 그리고 우리에게는 나무처럼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미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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