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추꽃 Jun 11. 2019

영화 <알라딘>을 보고

너무나 재미있는 영화, 그러나 역시 아이들을 위한 영화

디즈니의 실사영화 <알라딘>. 평이 워낙 좋았지만 내용 뻔할 것도 같았고 어렸을 때 만화로도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기에 볼까 말까 고민했던 영화인데, ‘이건 어른들을 위한 영화다’라는 댓글에 기대를 걸고 보기로 했다(예를 들어 <인사이드 아웃>이나 <코코> 같은 애니메이션은 나에게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였다. 어른들에게도 일종의 깨달음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오히려 아이들은 그 의미를 다 소화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영화 말이다). 음악, 대사에 녹아 든 재치,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특수효과와 윌 스미스라는 배우가 하나가 되어 탄생한 실사판 지니와 너무나도 매력적인 알라딘과 자스민. 어른들도 볼만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솔직히 어른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비우고 동심으로 돌아가야 이 영화를 제작의도에 맞게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어른들을 위한 영화’를 기대하고 간 서른의 나는 아래와 같은 잡생각들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1.     조언가로서는 다소 부족했던 지니


지니는 알라딘에게 주인을 섬기는 종이라기보다는 친구이자 의지할 곳 없는 소년의 조언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본인의 생각과 관계없이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만 익숙했던 지라 현실 감각이 조금 떨어진다. 예를 들어 세가지 소원을 알려달라고 할 때에 알라딘에게 돈이나 권력을 좇는 길로는 가지 말아달라고 한다. 본인이 그 길로 가는 이들을 많이 봐왔는데 욕심의 끝이 없는 길이라고. 아마 지니는 여태껏 어느 정도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만 만나와서 그런 듯싶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해 보이는 국가에서 하루 훔쳐 하루 먹고 사는 최빈곤층인 고아 알라딘의 형편을 알았으면 그런 조언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를 얻고도 결국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해 다시 길거리 거지가 될뻔한 알라딘이 안타까웠다. 알라딘 전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동굴에서 나오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한 것을 보면 지니를 만나게 된 행운도 단순 요행이 아닌 어느 정도 알라딘의 성품과 능력에 따른 보상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신 찾아오지 않을 기회를 충분히 누렸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알라딘을 처음부터 왕족 태생 왕자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겉모습만 바꿔 줄 수 있어서 언젠가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상황이었으면, 그리고 나중에 양심적으로 행동하라고 그렇게 화낼 것이었으면, 애초에 지니는 왜 굳이 알라딘을 왕자의 모습으로 바꿔주었는지 모르겠다. 알맹이 없는 겉껍데기가 얼마나 의미 없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지니가 말이다. 그리고 왕자 행세를 한 번 한 것은 사기가 아니지만 평생 왕자인 척 하는 것은 부도덕한 행동이란 말인가? 알라딘은 애초에 왕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스민과 결혼하는 것이 목표였으니 처음부터 공주의 배우자는 왕족이어야만 한다는 아그라바의 법을 바꾸자고 건의하면 쉬웠을 텐데, 이 대안은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다. 그 한 번의 사기가 탄로났을 때 왕실을 능욕한 죄로 알라딘이 자칫하면 오히려 큰 화를 입었을 수도 있었을 테니 아무래도 지니는 능력은 많지만 지혜로운 조언가는 아닌 듯 다. 결국 알라딘은 지니 덕은 크게 본 것 없이 자신의 용기와 지혜로 자스민의 마음을 얻게 되고, 오히려 지니가 알라딘 덕을 보았다.


물론, 아이들에게 돈과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의 내면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잘 전달 되었을 것이다.


2.     금사빠 자스민 공주님


길거리 소년 알라딘에게 하루 만에 어느 정도 마음을 빼앗긴 자스민은 자신에게 구애하는 알리 왕자에게 한동안 튕기더니 마법 양탄자를 타자마자 바로 ‘now I’m in a whole new world with you~’ 라며 사랑에 빠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오글거리는 대사로 노래를 한다. 알라딘과 알리 왕자는 동일 인물이긴 했지만 그 사실 역시 확인이 안 되었던 상황에서 자스민은 아이들 영화의 특징인 ‘금방 사랑에 빠지는’ 속도를 선보인다(아마 알라딘 외모가 엄청 자스민 스타일이었지 않나 싶다).


오히려 자스민에게서 보였던 현실적인 모습은 좋았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공주님은 백성들의 실정을 몰라서 상인에게서 빵을 갈취해 배고픈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훔치지 않았다고 우기다 알라딘의 눈에 띈다. 이 영화 통틀어 가장 현실적인 순간이었다. 그 상인의 성품이나 배경은 모르겠지만 빵을 팔아 연명해 가고 있는 똑같은 백성인데 자스민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공주님이었다. 너무 근시안적이거나 감정적인 정치를 펼칠 것 같은 자스민 옆에 알라딘이 중심을 잘 잡아주었으면 좋겠지만, 저토록 주체적인 아내 옆에서 아내바보로 잡혀 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이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는 볼거리도 풍부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원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개인적으로 A Whole New World만 기억에 남는 노래였다면, 실사영화이다 보니 각 캐릭터의 재조명과 함께 그들이 혼자 부르는 노래들도 그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살면서 한번도 그러한 관심을 받거나 결정권이 주어지는 환경에 놓였던 적이 없었을, 그래서 더욱 어수룩했지만 그것이 매력 포인트였던 주인공 알라딘. 탐욕스러운 자들만 주인으로 모셔왔던 터라 알라딘을 만나 조언가로는 다소 아쉬웠지만 친구로는 완벽했던 지니. 그리고 당돌하고 아름다운, 아그라바 왕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리더 자스민 공주. 이들을 만나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알라딘>을 보러 가길 추천한다. 다만 어른들을 위한 영화를 기대하고 가면 나처럼 잡생각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유리정원>을 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