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굴욕

남의 삶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나는 줄어든다

by 데브라

비교는 큰 사건처럼 오지 않는다.

비교는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온다.
스크롤 한 번, 사진 한 장, 짧은 문장 하나.
그것이 내 하루의 온도를 바꾼다.


처음에는 감탄이다.
“대단하다.”
그 다음은 미세한 침묵이다.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침묵 뒤에서 문장이 자란다.
“나는 뭐지?”
비교는 늘 이 질문으로 끝난다.


비교의 교묘함은 여기 있다.
나는 남을 보는 줄 알았는데,
실은 나를 재판하고 있다.
남의 결과를 증거로 삼아
내 삶의 가치를 판결한다.
판결은 언제나 빠르다.
“너는 부족하다.”
“너는 늦었다.”
“너는 뒤처졌다.”


비교는 사실을 다루지 않는다.
비교는 장면을 다룬다.
남의 삶에서 가장 밝은 장면만 골라
내 삶의 가장 어두운 장면과 붙인다.
이건 공정한 싸움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은 공정함을 원하지 않는다.
마음이 원하는 건,
나를 더 몰아붙일 이유다.


비교는 욕망을 자극한다.
욕망은 나를 움직이게도 한다.
그러나 비교에서 태어난 욕망은
대개 나를 살리지 못한다.
그 욕망은 나를 증명하게 만들 뿐이다.
증명은 끝이 없다.
한 번 증명하면 다음 증명이 온다.
그리고 증명은 늘 늦는다.
남의 장면은 계속 바뀌니까.


비교는 삶을 가늘게 만든다.
내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잃게 한다.
길을 잃으면 속도가 중요해진다.
속도가 중요해지면 숨이 얕아진다.
숨이 얕아지면 마음은 더 쉽게 흔들린다.
비교는 이렇게,
나의 리듬을 빼앗는다.


비교가 가장 잔인한 순간은
‘나’를 남의 기준으로 번역할 때다.
나는 나인데,
그 기준 속에서는 늘 미완성이다.
남의 성취는 나의 결핍이 되고,
남의 행복은 나의 실패가 된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해석을
진실처럼 품는다.


비교는 결국 묻는다.
“너는 왜 저렇게 못하니?”
이 질문은 성장의 질문이 아니다.
굴욕의 질문이다.
그리고 굴욕은
사람을 오래 약하게 만든다.


비교에서 빠져나오는 시작은
남을 보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세상은 보이게 되어 있다.
문제는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남의 장면은 남의 장면으로 두고,
내 삶은 내 삶의 언어로 읽는 것.
그 언어가 생기면
비교는 힘을 잃는다.


오늘 당신을 줄어들게 만든 장면은 무엇이었나.
그 장면은 사실이었나,
아니면 기준이었나.
그리고 그 기준을,
왜 당신의 것으로 삼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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