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라는 굶주림

칭찬을 먹고 사는 마음은, 결국 배고프다

by 데브라

인정은 원래 따뜻한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눈빛, 고개 끄덕임, 한마디의 “좋다.”
그것은 잠깐이라도 나를 살린다.
그래서 우리는 인정에 고마워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정은 음식이 된다.
먹지 않으면 기운이 빠지고,
먹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은 음식.
그때부터 인정은 선물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인정이 필요한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다.
인정이 필요한 건 인간의 본성이다.
문제는 인정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아니라,
인정이 없으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때 마음은 굶주림의 법칙을 배운다.
“더.”
“조금만 더.”
“이번만 더.”


인정은 이상한 힘을 갖는다.
받는 순간에는 충만하지만,
금방 비어버린다.
왜냐하면 인정은 내 안에 남지 않고
내 밖에서만 빛나기 때문이다.
빛이 밖에 있으면,
나는 늘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으로 나가야 살아남는 마음은
결국 지친다.


인정의 굶주림은
자기 자신을 거래 대상으로 만든다.
말투를 조절하고,
표정을 다듬고,
취향을 포장한다.
나는 나로 존재하기보다
‘좋아 보이는 나’로 존재한다.
그 상태에서 칭찬은 통화가 된다.
칭찬이 많으면 안심하고,
칭찬이 적으면 공포가 온다.


그래서 인정에 기대는 마음은
늘 불안하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평가는 흔들리고,
관심은 옮겨가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은 더 애쓴다.
더 애쓰면 더 지친다.
지치면 더 인정이 필요해진다.
이 굶주림은 스스로를 키운다.


인정은 또한 사람을 얇게 만든다.
나의 깊은 욕망을 묻어두고,
남이 좋아할 만한 욕망을 고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잊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할지부터 계산한다.
삶이 계산으로 바뀌는 순간,
기쁨은 늦게 온다.
대신 피로가 먼저 온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진짜로 칭찬을 원하는가,
아니면 칭찬을 통해
“존재해도 된다”는 허가를 원하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칭찬이 아니라
허가를 구하고 있다.
그 허가가 없으면
나는 존재할 자격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는 허가가 필요 없다.
존재는 이미 존재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은 배고픔을 줄인다.


인정을 끊어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인정이 없을 때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자리 하나를
내 안에 남겨두라는 말이다.
그 자리가 생기면
칭찬은 음식이 아니라 향신료가 된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


오늘 당신이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나.
칭찬이었나,
허가였나.
그리고 그 굶주림을,
누가 키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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