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벌한다
착한 사람은 대개 조용하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갈등을 피하고, 표정을 관리한다.
그 조용함은 성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조용함은 성품이 아니라 공포다.
싫어질까 봐.
버려질까 봐.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착함은 처음엔 선택이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는 선택.
그 선택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그러나 착함이 습관이 되는 순간,
그 선택은 규칙이 된다.
규칙이 되면 자유가 사라진다.
자유가 사라지면 착함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의무가 된 착함은 언제나 피곤하다.
왜냐하면 그 착함은 ‘타인의 기분’을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분은 날씨다.
변하고, 흔들리고, 예측되지 않는다.
예측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살면
삶은 늘 불안해진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매번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 “괜찮아”는 대개 거짓말이 아니다.
그는 정말 괜찮아지고 싶다.
그는 참으면 괜찮아질 줄 안다.
하지만 참는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쌓인 것은 언젠가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짜증, 무기력, 냉소, 혹은 갑작스러운 폭발.
착함의 폭력은 여기서 시작된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안에서는 자신을 계속 밀어붙인다.
“이 정도는 해야지.”
“네가 참아야지.”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이 말들은 위로가 아니라 채찍이다.
그리고 그 채찍은 늘 나를 향한다.
착한 사람은 종종
남을 실망시키는 일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더 깊이 보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남이 아니다.
‘실망시키는 나’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이미지가 무너지는 공포.
착함은 때때로
자기를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이미지를 지키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관계에서
기분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기분 나쁜 사람이 된다.
남에게는 친절하고,
자기에게는 잔인하다.
이건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은 이상하게도
자기에게 불공정한 판결을 쉽게 내린다.
착함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나쁜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다.
단단한 사람이 되는 길이다.
부드러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부드러움에 뼈가 생기는 것.
그 뼈가 바로 경계다.
경계는 벽이 아니라 문이다.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문이 없으면 집은 집이 아니다.
문이 없으면 누구나 들어오고,
주인은 계속 밀려난다.
오늘 당신이 삼킨 말이 있다면
그 말은 무엇이었나.
그 말은 정말 배려였나,
아니면 두려움이었나.
그리고 그 두려움의 대가를,
누가 치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