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는 자리

현재를 놓치는 사람은, 삶을 두 번 잃는다

by 데브라

현재는 늘 작다.

한 번의 숨, 한 번의 시선, 한 번의 걸음.
그 작은 것들이 모여 하루가 되는데
우리는 그 작은 것들을 자주 버린다.
대신 다른 시간을 산다.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


과거는 되감기고,
미래는 예언된다.
그래서 현재는 자리가 없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늘 다른 곳에서 뛰고 있다.
이것이 흔들림의 기본형이다.
세상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현재를 놓치는 사람은
삶을 두 번 잃는다.
첫 번째는 지금을 잃고,
두 번째는 지금을 잃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후회하며 또 잃는다.
삶은 여기서 끝없이 새고,
우리는 왜 피곤한지 모른다.


현재를 놓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의미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순간이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고 믿는다.
결과가 없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은 늘
다음의 재료로 전락한다.
지금은 준비가 되고,
지금은 과정이 되고,
지금은 언젠가의 도구가 된다.
도구가 된 순간은
맛이 없다.
맛이 없는 삶은
속도를 부른다.


현재는 속도를 싫어한다.
현재는 느리게만 열린다.
그런데 마음은 빠르다.
마음은 늘 한 발 앞에서
위험을 찾고,
평가를 계산하고,
후회를 준비한다.
그 바쁨이
현실을 ‘살지’ 못하게 한다.
현실을 살지 못하면
현실은 기억으로만 남는다.
기억은 늘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은
“내가 뭘 했지?”라고 묻게 된다.


현재는 특별한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특별한 순간이 아니다.
현재는 언제나 평범하다.
평범해서 놓친다.
평범해서 가볍게 취급한다.
그러나 삶은 평범한 것들의 합이다.
평범한 것을 잃는 순간
삶의 전체가 얇아진다.


현재에 돌아온다는 것은
생각을 없앤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은 있다.
다만 생각이 나를 끌고 가지 못하게 하는 것.
현재는 생각과 싸우지 않는다.
현재는 단지
여기로 돌아올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조용히 증명한다.
숨이 길어지고,
걸음이 느려지고,
시선이 덜 날카로워질 때
현재는 이미 와 있다.


우리는 종종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질문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다.
길은 방향이 아니라
자리에서 시작된다.
자리가 없으면
방향은 공포가 된다.


오늘 당신은
지금이라는 자리에 있었나.
아니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었나.
그리고 그 흔들림을
당신은 왜 삶이라고 착각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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