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제작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by 데브라

사람은 의미를 찾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
의미를 기다린다.
언젠가 큰 사건이 오면,
언젠가 답이 떨어지면,
언젠가 마음이 확실해지면

그때 비로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기다리는 삶은 늦다.
삶은 늘 먼저 지나가기 때문이다.
의미는 도착하지 않는다.
의미는 따라오지 않는다.
의미는 종종
내가 살기 시작한 뒤에야
조용히 붙는다.


의미를 찾는다는 말은
사실 책임을 미루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의미가 없어서 못 해.”
“의미가 생기면 할게.”
이 말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삶은
의미가 있어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삶은 시작되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다.


의미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의미는 내가 하는 선택에서 생긴다.
내가 무엇을 반복하는지,
무엇을 포기하는지,
무엇을 견디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 선택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만든다.
모양이 생기면
의미는 뒤늦게 따라온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의미는 그때 생긴다.


의미는 거대한 문장일 필요가 없다.
거대한 문장은 대개 거짓이 된다.
삶은 거대함을 유지할 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는 작은 문장이어야 오래 간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이유,
오늘 사랑을 지키는 이유,
오늘 나를 망치지 않는 이유.
이 작은 이유들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의미는 고통과도 관계가 있다.
고통이 의미를 주는 게 아니다.
고통은 그저 고통이다.
하지만 고통을 어떻게 다루었는지가
의미를 만든다.
피해로 남기면 상처가 되고,
재료로 쓰면 힘이 된다.
같은 고통도
어떤 손을 거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이 된다.


의미를 제작한다는 것은
현실을 꾸미는 일이 아니다.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되,
그 현실에 내가 어떤 태도를 붙일지
선택하는 일이다.
태도가 생기면
현실은 나를 부수지 못한다.
현실은 힘들 수 있지만
운명이 되지는 않는다.


의미는 완성되지 않는다.
의미가 완성되는 순간
삶은 굳는다.
굳은 삶은 더 이상 배우지 못한다.
의미는 계속 제작되어야 한다.
오늘 만든 의미는
내일 수정되어야 한다.
수정되는 의미만이 살아 있다.


오늘 당신이 기다리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미는 정말 ‘발견’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당신이 오늘의 선택으로
조용히 제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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